[월간 미술생각] ‘한국의 고흐’ 몽우조셉킴(mongwoo josepkim,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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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미술생각] ‘한국의 고흐’ 몽우조셉킴(mongwoo josepkim,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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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82호] 승인 2020.08.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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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망과 절망 껴안은 ‘藝術魂’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지. 빈센트 반고흐(vincent van gogh, 1853~ 1890)는 별을 그리워 했다. 그별을 그린 대표작이 <별이 빛나는 밤> 이다.
 

그리고 여기 한국의 반 고흐로 불리우는 바보화가 몽우조셉킴(mongwoo josepkim, 1976~)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열 살무렵 백혈병과 혈액암에 걸려 스무살도 채 살지 못할 것이라고 판명 받았던 화가는 “한국의 반 고흐” 앞으로 세계미술 100년을 상징할 화가라는 극찬을 받는 예술가이다.

외국인 컬렉터 들을 위해 ‘조셉킴’ 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조셉’이라는 단어는 ‘꿈꾸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몽우 또한 ‘꿈 친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거리의 화가 시절 보였던 범상치 않은 재능
20대 초반, 몽우는 거리의 화가였다. 주말이면 인사동 한 귀퉁이에 ‘좌판’을 깔았다. 한쪽에는 옥으로 깎아 만든 거북이 목걸이를 펼쳐 놓고, 그 옆에서 연필화, 아크릴화, 유화로 그린 행인들의 초상화를 팔았다.
 

바다의 연인(10호)
바다의 연인(10호)

 

초상화를 그릴 때부터 몽우의 재능은 범상치 않았다.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했다. 한국인들은 연필화를 좋아했지만, 외국인들은 유화나 아크릴로 그린 몽우의 초상화에 매료됐다. 

통역 가이드가 10%의 수수료를 받고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소개했는데, 당시 무명이던 몽우의 초상화는 불과 1만∼2만원 대의 가격으로 소장할 수 있었다. 연필화 5분, 아크릴화 10분, 유화 30분. 이 천재화가의 현란한 붓놀림에 외국인 여행객의 탄성이 그치지 않았다.

몽우의 초상화는 인사동 거리의 이슈로 떠올랐다. 초상화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는 외국인들이 다른 사람을 그린 일종의 샘플 작품까지 모조리 사서 가방에 담았다. 여행객 중 일부는 한국에 오기 전 미리 여행사에 사진을 보내 초상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가 소박한 ‘거리의 초상화 작가’로 입신했더라면 꽤 유족한 소시민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초상화와 소품을 그려 팔아 전시회를 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날아올라 아침으로 가는새 10호
날아올라 아침으로 가는새(10호)

 

1999년은 몽우에게 특별한 해다. 한 재미교포의 제안과 노력으로 몇 년간 그린 작품들이 미국에 판로를 열게 된 것이다. 

그 해 12월 500점에 달했던 그의 작품이 이틀 만에 전부 팔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특히 독일과 유태계 콜렉터들이 수십 점씩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황소에 대한 피카소의 해석(2호)

 

피카소와 샤갈과 호안 미로의 작품이 오묘하게 결합된 그림이란 평가를 받았다. 작품성에 비해 그림의 가격은 현저히 낮았다. 콜렉터에게는 생소한 한국인 화가의 그림이 다양한 화풍으로 마치 파노라마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심지어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아트 딜러까지 그의 작품을 적극 구매했다. 몽우의 예술은 화려하게 개화하는 듯했다. 여기까지가 몽우 예술인생의 1막 1장이다.

몽우는 독학의 화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그는 역설적으로 동서양, 고금의 모든 화가를 사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불멸의 화가로부터 자신의 예술적 영감과 자양분을 맘껏 흡수했다. 그 최초의 스승은 사진과 전각 전문가이자 음악인이었던 아버지다. 그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님에게 초상화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진관을 운영하셨는데 흑백사진에 유화로 덧그려 칼라사진을 만드는 데 비상한 재주를 보이셨지요. 기미와 잡티를 다 없애고 어두운 얼굴을 밝게 만들었습니다. 예식장에서 사진 찍을 때 눈 감은 사람의 눈을 그려주었고, 증명 사진을 확대해 달라면 아예 유화로 그림을 그려 주었어요. 이렇게 새로 그린 유화를 모두 사진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그림은 사진처럼 정밀했지요”
 

포토리얼리즘에 경도됐던 젊은 날의 미술적 편견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극사실화에 몰두했다. 추상화는 일종의 허위처럼 느껴졌다. 사실화를 그릴 능력이 부족한 화가가 걷는 길이 추상의 세계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가끔 그렸던 정밀한 초상화, 특히 사진과 조금도 구분할 수 없었던 눈동자의 모습에 감탄했다. 아버지는 사진을 찍은 뒤 얼굴 윤곽을 붓으로 보정했다.

필름에 연필로 잡티와 윤곽을 새로 잡았고, 그렇게 인화된 사진의 주인공은 모두 ‘얼짱’이 됐다. 그것은 분명 ‘윤색’이었지만 아버지의 철학은 달랐다. 

“모든 사람의 인상은 원래 선한 것이고, 나는 그 인상을 되돌려준다”면서 “티끌 같은 잡티 하나라도 없애는 작업은 사진 속 주인공이 타고난 얼굴을 온전하게 복원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몽우는 아버지의 유산인 극단적 리얼리즘을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저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사진처럼 그리는 것을 목표로 생각했습니다. 하이퍼 리얼리즘, 포토 리얼리즘에 경도된 시절이었지요. 피카소의 작품은 스무 살 나이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화가로서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같은 그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백혈병을 앓았던 몽우는 밤이 싫었다. 몸이 염증으로 붓고 열이 나면 한껏 날카로워진 정신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이 오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으로 어린 몽우는 몸서리쳤다. 

하지만 새벽이 가까워지면 하늘색은 푸르름을 띤다. 까만 밤이 청색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찬란하고 따스한 아침이 온다. 이렇게 새벽이 오는 것을 몽우는 좋아했다. 어릴 때 그런 경험으로 몽우의 그림에는 청색의 기운이 강하다. 희망이 가득한 새벽이나 아침을 떠올리는 그림이 많다.

낙원(30호)
낙원(30호)

 

글. 안스(Ans) 아트딜러
art7777.modoo.at / Tel. 0505-71357-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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