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칼럼] 수의사 역할 재정의하고 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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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칼럼] 수의사 역할 재정의하고 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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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41호] 승인 2023.02.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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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과대학에 입학한 첫 해부터 지금까지 줄곧 듣고 있고, 다른 이에게 수의사란 직업을 소개할 때에도 어김없이 하는 말이 있다. 수의사의 진출 분야가 한없이 넓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의사나 수의과대학생이나 할 것 없이 익숙한 말이 있다. ‘반려동물 임상 편중’이다. 수의사는 선택할 수 있는 하고많은 길 중에 반려동물 임상을 선택한다.

반려동물 임상 편중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내버려 두기에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허다하다. 반려동물 임상 분야 경쟁 심화로 인한 수의사의 삶의 질 및 동물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나, 범국가적 가축전염병에 대응할 전문인력 부족은 차치하고 가장 우려되는 것은 수의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는 반려동물 임상 편중 문제를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한 때는 수의사라 하면 수의를 만드는 사람인 줄 알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수의사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뜻이지 않을까. 이제는 대부분 수의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수의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불분명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의계에 속하지 않은 주변인에게 수의사의 진출 분야가 다양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꼭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개나 고양이가 아닌 동물 종을 대며 수의대 다니면 ○○○도 배우냐는 것이다. ‘수의과대학생이라면 동물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잘 알겠지, 그런데 이런 동물까지 배우나?’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대중은 수의사가 개와 고양이를 다루고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앞서 말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수의사는 꿀벌도 다룰 수 있다고(어쩐지 꿀벌도 배우냐고 먼저 묻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주로 배운다고, 물어본 동물 종도 다루기 위해서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보통 해외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답하곤 한다. 

수의사의 역할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수의과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어느 정도 일치한다. 대학이 시대정신과 사회문화 선도자의 기능을 잃고 직업인 육성 기관으로 부각되는 탓에 대중의 인식이 대학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리라.

문제는 교육이 학생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관심과 흥미를 계발하여, 학생들의 진로 설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에서는 ‘2022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 총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수의과대학생들에게 향후 희망하는 진로와 해당 진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물었다. 전자의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63%가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를 희망한다고 답했으며,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59%가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과 흥미 혹은 가치관 및 자아실현이라고 답했다.

대중의 인식은 대학이 가르치는 것에 영향을 미치고, 교육은 학생의 진로 결정에 관여하며, 한 직종 내에서의 인력 분포는 해당 직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좌우한다. 수의사의 역할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수의과대학 교육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으면서 반려동물 임상 편중 문제를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만든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는 협회의 노력을 요구하고 싶다. 미국수의사회(AVMA)는 수의사의 권익을 신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협회의 주요 수단으로서 대중에 수의사가 행하여야 할 업무의 중요성과 다양성을 알리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수의사는 사람과 동물의 건강을 수호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유일한 전문가로서 모든 동물 종의 건강과 복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설파한다. 우리 수의사회도 이와 같이 수의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주도적으로 정의하고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대학의 노력 역시 강조된다. 수의사로서 진출할 수 있고 진출해야만 하는 다양한 분야를 수의사로서 진로를 결정하는 대학생 시기에 미리 접해볼 수 있도록 교육기반시설을 마련하고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데 비용과 자원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수의과대학생으로서 다른 수의과대학생과 스스로에게도 당부하고자 한다. 수의사는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책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한들, 그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주체적인 학습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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