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의사도 수의법의학 교육 필요해”
동물학대 범죄 증가로 부검 요청 늘어…수의법의학자 현장서 증거 수집 필요해
‘수의법의학’은 의학적 진단과 부검을 통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동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사인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인간 법의학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포렌식, 유전자 분석, 법인류학 등 다양한 과학적 기법을 결합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증가하는 동물학대 처벌 위해 필요성 대두
최근 수의법의학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최근 들어 반려동물 대상 학대 사건이 증가한 탓이다. 지난 달 통영 바닷가에서는 돌에 묶인 고양이가 익사한 채 발견되었고,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산 채로 불태우는 행위도 목격됐다. 동물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영상으로 촬영해 SNS에 공유하는 범죄도 등장했다.
경찰청에 의하면 학대 의심사례로 부검을 요청한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2020년 119건, 2021년 228건이던 것이 2022년에는 323건이 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동물 부검을 할 수 있는 곳은 김천에 위치한 농림검역본부밖에 없었다.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는 증가하는 데 비해 처벌은 부진했던 이유다.
수의법의학적 검사는 이런 동물학대 여부를 판단하고, 체계적으로 조사해 처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의 수사는 사진 및 영상 증거,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동물 부검에 대한 매뉴얼에 따라 수의법의학적으로 진단이 이뤄지리라는 기대다.
수의료분쟁 및 공공보건 차원 필요성
수의료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수의법의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의법의학자는 질병이나 손상과 사인 간의 관계를 밝혀 과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수의사 입장에서도 악의적인 과실 주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또한 ‘공공보건’을 위해서도 필수다. 인수공통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의법의학은 감염병의 원인과 전파 경로를 규명하고, 예방 조치를 마련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차체 차원 수의법의학센터 설립
최근에는 지자체가 수의법의학센터 설립에 나서고 있다. 올해 4월 말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에 따라, 시·도 가축방역기관장에게도 동물검사를 의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 울산 보건환경연구원 등이 검역본부로부터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수의법의학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동물위생시험소는 총 12명의 인력을 배치해 수의법의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건국대 동물병원과도 협력한다. 우선 수사기관이 학대 의심 동물폐사체를 수거하고 검사를 의뢰하면 건국대 동물병원에서 부검 전 영상 검사를 하게 된다. 이후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부검, 병리검사, 질병검사, 중독검사 등을 실시하고, 이를 종합해 사인을 규명한다.
센터에서의 수의법의학적 검사도 중요하지만 동물 학대나 변사 사건에 있어서 수의법의학자가 사건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전문 수의학자가 아니라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 및 채취하는 과정에서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과정에 수의법의학 교육 필요해
임상수의사에게도 수의법의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물학대를 조기에 인지하기 위해서다. 실제 반려동물의 상처는 며칠 내에 없어질 수도 있어 임상수의사가 동물병원에서 일차적으로 증거 수집을 하면 동물학대 여부 판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수의과대학 차원에서도 수의법의학과 같은 전문적인 과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린다. 현재는 수의병리학교실에서 동물 부검이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 과정은 없는 현실이다. 수의학의 선진국인 미국은 현재 수의과대학 중 13%가 수의법의학을 개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수의법의학의 중요성에 관심이 쏠리는 만큼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