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
2024년도 어느새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도 수의계는 다사다난한 해였다. 연초부터 소형병원과 대형병원의 매출 격차가 크게 벌어지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는가 하면 동물병원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화진료의 세분화, 전문화로 전문센터 설립 경쟁에 불이 붙었다.
또한 동물병원들은 자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느 때보다도 원내 증례발표와 세미나 등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쳤으며, 진료비 공개는 물론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수의계는 각종 규제 압박과 병원 간 경쟁으로 생존을 위한 싸움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제 2의 부흥기를 맞았던 동물병원은 엔데믹과 함께 바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으며 다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 비상계엄이라는 40여 년만의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금융시장마저 꽁꽁 얼어붙으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동물병원 시장의 내년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날뛴다는 의미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꼽혔다고 한다.
‘도량발호’는 권력자가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해 제멋대로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밟고 자기 패거리를 데리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도를 지나친 것을 가르키는 말로 작금의 상태와 딱 맞아 떨어지는 사자성어다.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력의 맛을 한번 들이면 이렇게 헤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도량발호’에 이어 2위로 선정된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의 ‘후안무치(厚顔無恥)’와 3위를 차지한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뜻의 ‘석서위려(碩鼠危旅)’가 꼽힌 것은 어쩌면 한 세트로 오는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처럼 권력자의 도량발호가 국가의 전반적인 위기를 몰고 오는 가운데 동물병원 역시 이를 피하는 것이 불가피해 새삼스럽게 권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어느 집단이든 수장의 장기 집권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어서 임기를 정해 놓고 투표로 선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권력자들은 권력의 취기를 반드시 경계해야 하고, 권력자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제도는 어느 집단이든 살아있어야 한다.
문제는 수장을 서로 맡지 않으려는 기피 현상이 심한 집단일수록 장기 집권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한 독단과 폐해는 그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수의계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학회든, 지부든, 단체든 수장은 반드시 필요하고, 이들의 권력이나 장기 집권을 견제할 시스템은 반드시 작동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수장을 맡지 않으려고 남에게 떠넘기는 상황이 만연한 수의계에서 어쩔 수 없이 장기 집권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는 권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봤을때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물론 이들의 노력과 집념으로 지금의 수의계를 만든 건 분명하지만 스스로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줄 선배로서의 포용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동물병원의 트렌드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고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수의계의 모든 단체들도 활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