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 원장 칼럼] 임상 현장에서① 치아파절
세상에 막 뽑아도 되는 이빨은 없다
치아파절은 수의치과 치료 중 보호자가 동물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다. 대부분은 부러진 이빨을 뽑기보다 레진이나 크라운 치료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긴 예약을 뚫고 동물 전문치과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근처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발치보다 어떻게든 부러진 이빨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일 거로 추측한다.
이런 보호자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부러진 이빨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람 치과에서도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MTA(Mineral Trioxide Aggregate)나 **GTR(Guided Tissue Regeneration)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도 병원을 찾은 아이에게 튼튼한 이빨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수의사들조차도 동물의 이빨 정도는 막 뽑아버려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동물은 씹지 않고도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이빨이 가지는 미학적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러진 이빨을 살릴 때 드는 비싼 치료 비용도 문제가 될 테고 말이다. 이처럼 부러진 이빨을 치료하는 일은 ROI(Return On Investment)가 낮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치료’로 여겨진다.
열육치(裂肉齒, Carnassial tooth)는 동물의 어금니 중에서 고기를 자르고 찢는 데 특화된 치아를 말한다. 상악(윗턱)의 마지막 소구치(Premolar, P4)와 하악(아랫턱)의 첫 번째 대구치(Molar, M1)로 구성되며, 두 치아는 가위처럼 맞물리며 고기를 절단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개와 고양이도 잘 씹는다. 어떤 개는 더 오래 씹고, 어떤 개는 덜 씹을 뿐 아이에게 적절한 음식을 급여하고, 이빨 건강에 문제만 없다면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동물은 없다. 아이가 갑자기 덜 씹는다면 십중팔구 이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불편하지만 말하지 않을 뿐 부러진 이빨 대부분이 열육치라는 사실이 동물도 즐겨 씹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음식을 씹는 것뿐만 아니라 터그 놀이나 사냥놀이에도 씹기는 중요하다. 씹는 과정에서 뇌의 측좌핵이 활성화돼 도파민 분비가 증가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티솔의 농도를 낮춰준다.
우리 개가 종일 개껌을 물고 있는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것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동물의 씹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에 가깝다.
“친구들이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냐고 말해서 속상했어요”
부러진 양쪽 어금니의 크라운 치료를 진행한 보호자가 진료 마지막 날 제게 했던 말이다. 잘 보이지도 않는 개의 이빨 치료에 그렇게 큰돈과 노력을 들이는 게 친구들에겐 ‘유난’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동물치과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이런 얘기를 듣는 건 적응이 어렵다. 사람치과를 할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 ‘나는 유난 떠는 사람들을 돕는 유난스러운 의사구나’라는 생각에 가끔 허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부러진 이빨을 살리기 위해 세상 누구보다 유난을 떨 생각이다. 크라운 치료에 대한 불신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이빨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병원에서는 크라운 치료를 받은 환자의 크라운이 탈락할 경우 평생 무상으로 재부착해주는 ‘크라운 평생 보증 서비스’라는 엄청난 짓도 계속해서 벌일 것이다.
부러진 이빨을 최대한 살리는 일이 동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일이라 믿는다. 치과의사와 수의사 복수면허자로서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의무와 같은 일이라 믿는다. 세상 어떤 동물의 이빨도, 그냥 막 뽑아도 되는 이빨은 없다.
* MTA(Mineral Trioxide Aggregate): 생체친화적 재료로 이것을 사용해 치아의 신경(근관)을 치료하는 고난도의 시술이다. MTA 시술은 기존 신경치료의 단점을 보완하고, 치아를 최대한 보존해 손상된 치아 뿌리의 재생을 유도하는 데 탁월하다.
** GTR(Guided Tissue Regeneration): 치주조직의 결손 부위를 재생하기 위한 치료법으로 차단막(barrier membrane)을 사용하여 특정 조직의 재생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치주인대, 치조골, 백악질 등 치아를 지지하는 구조물의 복합적인 재생을 돕는 데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