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호 교수의 영화이야기⑳] 미키17(2025)

봉준호 세계관의 시즌1 마무리와 같은 이야기

2025-03-21     개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전 세계에 첫 선을 보인 이번 영화는 관람 전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달리 막상 감상 후에는 여러모로 기생충과는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조화된 계급을 다루고 있는 점에서는 대체로 지난 작품들과 같지만 그 계급 구조에 속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달라졌으며, 영어로 표현된 헐리우드 영화인 만큼 한국 관객 입장에서 본다면 같은 봉준호 작품이긴 하지만 기생충 때와는 반대로 1인치의 장벽을 느끼는 아이러니도 있다. 

배경은 근 미래를 다룬 SF로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보편적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SF는 단지 배경일 뿐 기존의 봉준호를 기대한 사람과 SF영화를 기대한 사람 모두 실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과 이해가 주 테마라는 점에서도 기존의 봉 팬이라면 좀 낯설 듯하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사람은 물론 주연 미키 반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이다. 미키 반스는 어쩔수 없이 친구 티모와 함께 지구를 떠나게 되는데 그 조건으로 일종의 실험체 역할을 하게 되며, 실험체가 죽으면 외부에 저장된 기억을 프린팅된 육체에 업로드하여 다시 부활하는 익스펜더블(소모품)로 불리는 임무를 맡게 된다. 

미키17은 17번째 부활한 미키 반스이며, 오류로 인해 17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개체가 미키18이다. 패틴슨은 동일한 복장의 옷을 입고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미키17과 18 두 인물을 연기하는데, 물론 미키17이 주인공인 만큼 미키18에 비해 훨씬 노출빈도가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미키17과 18을 관객이 직관적으로 잘 이해하도록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밖에 눈에 익숙한 배우인 마크 러팔로(독재자 케네스 마샬 역)나 토니 콜렛(일파 마샬 역), 스티븐 연(미키의 친구 티모 역) 등이 분한 캐릭터들도 다 각각 극에 필요한 역할이었지만 뜻밖에 눈에 띄는 캐릭터는 미키와 연인관계인 나샤(나오미 애키)이다. 극의 전반부에는 비록 인종적 소수자이고 사연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소유욕이 강한 것처럼 보였던 이 캐릭터는 후반에 미키17에게 너희(미키1부터 18까지) 모두 미키 반스라는 하나의 사람이라는 각성을 하게 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익스펜더블로 매번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미키에게 평소 주변 동료들은 무심하게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라는 질문을 하는데, 이를 미키는 늘 적당히 둘러대지만 친구이자 연인을 잃은 동료 카이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카이 역은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라는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배우가 맡았는데 봉 감독이 21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장을 할 때 그가 주연한 ‘레벤느망’이 황금사자상을 받아 주목하고 이번 작품에 불렀다고 한다. 양성애자로 보이는 카이는 가장 아쉬웠던 캐릭터로 서사와 분량 비중을 높이거나 아예 뺐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 하나의 중요한 캐릭터는 외계생명체인데 인류가 그간 경험해 온 다른 외모와 언어로 인한 소통과 이해의 부재가 얼마나 엉뚱하고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한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영화는 지난 봉준호 작품들과 달리 외계생명체와의 공생과 미키17이 미키 반스라는 자아를 되찾는 해피엔딩을 선사하는데 그게 아쉬웠을까. 감독은 엔딩 부에서 주인공의 찰나의 꿈을 통해 정반대의 섬뜩함을 경험하게 한다. 훌륭한 작품을 즐겁게 감상했지만 반면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 정도로 거대한 SF적 배경이 필요했을 까는 의문이며, 많은 이야기가 너무 압축되어 아쉬웠다. 극장용 영화로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좀 걷어내고 후속으로 프리퀄과 시퀄 서사와 인물을 확장한 6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재가공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