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호 교수의 영화이야기(21)] 플랜 75(2022)
일본의 불안을 그렸지만 우리의 미래는 아닐지
영화 ‘플랜 75’는 2022년에 일본-필리핀-프랑스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대부분의 배우가 일본인이고 촬영도 일본에서 이루어졌기에 일본 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개봉하였는데 관람객은 별로 많지 않았다. 필자는 재직하는 학교의 다양성위원회 주관으로 교내 도서관에서 귀한 상영회가 열려 이번에 감상하게 되었다.
‘플랜 75’는 일본정부가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이 작품을 연출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일본에서 75세 이상을 초기 고령자라고 명명하는 문화가 생긴 것에 영감을 얻어 제목을 플랜 75로 하였다고 한다.
내용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감상하면서 받은 느낌은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플랜 75’를 신청하도록 상황이 몰려가는 니찌라는 78세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하여 플랜 75를 집행하는 정부기관의 공무원인 히로무, 니찌 할머니에게 플랜 75관련 전화상담서비스를 하는 요코 및 신청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필리핀 출신 노동자 마리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호텔에서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니찌 할머니는 더 이상 사회에서 필요 없어진 존재라는 생각에 플랜 75를 신청하게 되고, 히로무는 플랜 75를 신청하러 온 삼촌을 20년만에 만나면서 플랜 75에 대한 실체를 접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게 된다. 이 두 사람이 중심인 이야기지만 사실 감독은 나머지 두 명의 조연의 시각에서 관객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자 한다.
플랜 75를 신청한 노인들이 이를 철회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상담을 하라고 교육하는 직장상사의 교육에 혼란스러워하는 상담원 요코와 개인화, 파편화된 일본사회와 달리 다들 어렵지만 필리핀에 사는 자녀의 수술비가 필요한 자신을 도와주는 필리핀 커뮤니티 속의 마리아를 보여주며 감독은 일본사회가 놓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꾸짖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냉혹한 현실세계를 극한의 무덤덤함으로 이어간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메이와쿠를 가장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온 일본에서 75세 이상의 노인은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아무 역할이 없는, 사회와 다음 세대에게 짐이 되어 버린 노인에 대해 플랜 75는 스스로 선택하는 안락사를 마치 복지정책의 일환인 것처럼 포장한다.
무료급식소가 플랜 75의 홍보현장인 것만 보아도 노인 중에서도 어떤 노인을 대상으로 이러한 법을 집행하고자 하는 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연명치료 거부나 존엄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러한 선택 조차 주변의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영화는 상기시켜 준다.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대한민국은, 인류는 앞으로 초고령화가 현실이 된 사회를 어떻게 적응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