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일 원장 칼럼] 동물병원에서⑩ 

공공동물병원, 과연 필요한가

2025-06-19     개원

요즘 지자체마다 경쟁하듯 공공동물병원을 설립하고 있다. 겉으로는 참 그럴듯하다. 반려동물 진료의 공공성 확대, 저소득층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 경감, 유기동물 복지 향상까지. 듣기만 해도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싶은 명분이다. 하지만 이 정책이 지금의 구조에서 정말 필요한지, 그리고 진짜 도움이 되는지, 진심으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엔 전국적으로 5,000개가 넘는 민간 동물병원이 있다. 지방도시나 농어촌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병원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 특히 수도권이나 중·대도시에는 1km 내에 3~4개의 병원이 있는 곳도 흔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자체가 공공자금을 투입해 새로운 병원을 세우는 것이 과연 필요한 공공의료 확충인지, 아니면 행정의 과잉과 세금 낭비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포시, 성남시, 화성시 등 이미 동물병원이 많은 지역에서 공공병원을 짓는 건 사실상 ‘공공’을 앞세운 세금 기반의 민간 병원 경쟁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분명 민간 인프라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일이며, 애써 쌓아온 수의료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지자체가 설립한 공공동물병원은 대개 백신, 기초 진료, 내장칩 등록 등을 ‘무료’ 또는 ‘최저가’로 제공한다. 처음엔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하지만 점점 일반 시민 전체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포시는 이미 65세 이상 일반 시민까지 백신과 등록칩을 무료로 제공한다. 일부 지자체는 X-ray, 기초 혈액검사까지 “전 시민 대상”이라고 홍보한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보호자들은 점점 민간병원 대신 공공병원을 찾게 될 것이고, 중소 동물병원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 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공은 시장을 보완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흐름은 분명히 직접적인 시장 침해이자 민간 병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책이다.

수의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다. 고가의 장비, 인건비, 24시간 응급대기, 전문 인력 훈련, 수술 후 관리 체계까지 모두 수의사의 헌신과 투자로 유지된다. 이러한 체계가 무너지고 나면 진료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공공동물병원을 설립하며 “동물복지를 실현했다”며 자신들의 치적을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은 건물만 지었다고 운영이 되는 게 아니다. 진료를 책임질 수의사의 전문성과 지속 가능한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그 병원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현실적으로 공공동물병원은 민간 병원처럼 다양한 질병에 대응하거나 고난도 진료와 수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인력과 장비, 시설, 진료 경험 등 여러 측면에서 민간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할 수 있는 진료는 제한적이고, 그 범위는 예방접종, 중성화, 간단한 처치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수익 구조이다. 공공병원은 저렴한 비용이나 무료 진료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이다. 그렇다고 진료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전문성도 낮고 수익성도 없으며, 결국 운영은 지속적인 세금 투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좋은 정책’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산 대비 실질 효과는 미미하고, 병원은 점차 형식적인 행정시설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 장비 고장, 진료 범위 축소 등으로 인해 ‘운영만 하고 진료는 거의 없는’ 상태로 전락한 사례들도 있다.

민간 병원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공공병원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다. 전문성도 없고, 수익도 없고, 효과도 미미한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수억 원의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면 그것은 동물복지를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구조적 세금 낭비에 가깝다.

공공병원의 명분 중 하나는 유기동물 구조 및 치료이다. 하지만 유기동물 진료는 이미 지자체 위탁 보호소, 동물보호단체, 민간 병원 리퍼럴 협약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있다. 유기동물은 일반 환자와는 치료 목적, 법적 지위, 처치 접근성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일반 진료와 한 공간에서 혼합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크다. 유기동물을 보호하겠다면 별도 예산과 보호소 기능 강화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동물 복지’를 내세워 일반 보호자 대상 공공진료까지 확장하는 건 공공병원의 존재 이유를 억지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수의사는 동물복지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이다. 긴급한 상황에서 한밤중 수술을 하고 보호자의 심정을 같이 느끼며, 의료윤리를 지켜온 전문가들이다. 그런 수의사들을 무시하고, 아무런 논의도 없이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덤핑 경쟁을 유도하고, 생존권을 흔드는 방식은 잘못됐다. 정부가 정말로 동물복지를 생각한다면 공공이 민간과 손잡고 가는 구조, 예컨대 취약계층 대상 바우처 제도, 동물의료보험 확대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을 입안하시는 분들께 간절히 말씀드린다. 공공동물병원, 과연 지금의 구조로 꼭 필요한가? 반려동물의 진료비 문제, 꼭 공공병원을 지어야만 해결되나? 민간의 헌신과 노력을 짓밟고, 전문성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방식이어야만 하나? 수의사 없는 동물복지는 없다. 민간을 파괴하는 공공은 진정한 공공이 아니다. 부디 수의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