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호 특집기획Ⅰ] 수의사의 미래를 묻다 | 변화하는 마케팅, 대응 전략은?③
“데이터가 미래 동물병원 진료실 바꾼다” 데이터 기반 타깃 마케팅 시대…데이터 읽고 적용하는 ‘데이터 리터러시’ 중요해져
산업 전반이 점점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고객의 행동을 수치화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수요를 예측해 운영 전략을 세운다.
인의에서도 병원 CRM 시스템, 전자의무기록 분석, AI 진단 솔루션 등이 일상화되었고, 환자 한 명당 LTV(Life Time Value, 생애 가치)를 따져 맞춤형 관리와 리마케팅을 수행하는 시대다.
이런 흐름은 동물의료 분야에도 점차 스며들고 있다. 반려동물 수는 줄고, 병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진료만 잘하는 병원’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특성을 분석하고,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감’이 아닌 ‘수치’로 환자 분석하는 시대
데이터를 활용하면 무엇이 가능해질까. 가장 기본적인 활용은 내원 환자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연령, 품종, 성별, 진료 항목, 재방문 주기, 클레임 이력 등을 기준으로 환자군을 세분화하면 각 병원 상황에 맞는 타깃을 도출할 수 있다. 보호자에게 맞춤형 건강 리포트를 자동 발송하거나 백신 리마인드 메시지를 통해 내원을 유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추, 말티즈 같은 견종은 치주질환 내원이 유독 많다는 데이터가 있다면 해당 품종 보호자를 대상으로 ‘프리미엄 스케일링 패키지’나 ‘치주관리 정기 케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고양이 보호자는 평일 낮 시간을 선호한다는 예약 패턴을 활용하면, 그 시간대에 맞춰 ‘고양이 전용 진료 시간’을 운영하거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또한 계절성과 연계해 여름철 고온다습한 날씨에 외이염, 피부질환 내원이 증가하는 특정 견종군을 타깃으로 예방 프로모션을 기획할 수도 있다. 진료 시즌을 예측하고, 미리 알림이나 혜택을 제공하면 병원의 사전 예약률과 수익 예측력도 높아진다.
병원 내부적으로도 데이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6개월 간 진료 빈도가 급감한 보호자, 최근 클레임이 있었던 보호자라면 ‘이탈 위험군’으로 분류해 관리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정기적으로 내원하고 고가 진료 수요가 높은 보호자라면 VIP 고객으로 분류해 우선 대응하거나 전용 혜택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보호자가 다음에도 또 올까?’, ‘어떤 품종이 이 시기에 어떤 질병으로 많이 올까?’라는 막연한 판단을 넘어서 보호자와 환자의 행동을 데이터로 수치화함으로써 진료·마케팅·운영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데이터 활용, 이미 현장에 들어왔다
벌써 일부 동물병원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 기반 진료를 도입해 적극 활용 중이다. 대표적인 EMR 통합 플랫폼인 우리엔(대표 고석빈)의 ‘PMS 365 Cloud’는 진료차트, 진단영상, 고객관리, 매출·재고관리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이미 전국 1,800곳 이상 병원이 도입해 활용 중이다. 약품 재고 및 고객 CRM 기능도 포함돼 동물병원 운영 전반을 효율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충북대 수의대 연구팀은 EMR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려견의 품종·성별·생애주기별 질환 분포를 정리하고, AI 기반 질병 예측 모델을 개발 중이다.
CRM 영역에서도 벳플럭스(대표 윤상우)의 ‘늘펫’ 챗봇은 보호자 문진, 진료 후 피드백, 재방문 리마인드 등을 자동화해준다. 병원은 이를 통해 고객 관리 자동화와 재방문률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진료차트는 각종 통계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초진 비용 구간별 보호자의 재방문율을 분석해 20만 원대 재방문율이 가장 낮았다면 가격 조정을 할 수 있다. 또 보호자 정보, 진료 이력, 예약·결과 리포트까지 통합 관리해 향후 플랫폼 기반 진료 및 보호자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시스템도 구축할 수 있다.
데이터가 진료실을 넘어 병원 경영과 환자 커뮤니케이션 전 과정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데이터 리터러시, 수의사의 핵심 역량
이제 데이터는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도구가 아니라 병원의 방향을 제시하는 필수가 되고 있다. 수의사에게도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고, 임상에 적용할 줄 아는 능력, 즉 ‘데이터 리터러시’가 중요해 졌다. 2023년 충북대 수의과대학에서 열린 ‘동물의료 디지털 헬스케어의 현재와 미래’ 포럼에서도 수의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으로 데이터 리터러시를 강조한 바 있다.
특히 AI 기반 진단기기나 알고리즘 보조 시스템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만큼 제공받은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 전문가는 “앞으로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 자체가 진료의 일부가 될 것”이라며, 수의대 차원의 교육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데이터를 다루는 과정에서는 윤리적인 감수성도 필요하다. 보호자의 개인정보나 반려동물의 진료기록을 수집하고 활용할 때는 명확한 고지와 동의 절차가 반드시 수반돼야 하며, 데이터 보관 방식과 활용 목적 역시 투명하게 안내해야 한다.
특히 상업적 활용이나 외부 기관으로의 전송이 포함되면 더욱 정교한 동의 절차가 요구된다. 데이터는 병원의 전략 자산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민감한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