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심야진료 책임’과 ‘수의사 번아웃’ 사이

밤에도 불 켜진 동물병원의 현실과 과제…지속 가능한 24시 병원 모색해야

2025-11-10     박진아 기자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24시간 동물병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야간에도 수의사가 상주하며 즉각 대응이 가능하고, 일부는 대학병원 수준의 응급 진료 체계를 갖추고 있다. 언제든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보호자는 안심이 되고, 응급 상황에서 반려동물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망이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인력난과 피로 누적, 높아진 운영비라는 현실적인 부담이 자리한다. 병원과 의료진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24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4시 진료 이유:
보호자 기대와 병원 경쟁력
야간에는 난산, 교통사고, 호흡곤란, 발작 등 응급 환자가 집중된다. 반려동물은 통증을 숨기는 특성 탓에 병증 인지가 늦어지기 쉬우며,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치기도 한다. 24시간 병원은 이러한 위험을 줄이는 ‘생명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24시간 진료 체계는 보호자에게 신뢰로 이어진다. 언제든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인식돼 충성도와 재방문율을 높일 수도 있다. 
24시연수동물메디컬센터 박정현 원장은 “야간 진료를 준비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보호자들이 ‘이제 안심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야간 진료로 축적된 임상 경험과 데이터는 주간 진료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광명24아이디동물의료센터 김남수 원장은 “야간 진료에서 쌓인 신뢰가 낮 시간대 내원으로 이어지며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병원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24시간 운영을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진료 시간 확장이 브랜드 인지도와 지역 내 입지 확보의 전략이 되고 있는 것이다.

24시 진료의 부담:
인력난과 번아웃 해결 방법은

24시간 진료를 유지하려면 병원 운영 구조 전반이 달라져야 한다. 야간 전담팀 편성, 응급·중증 프로토콜, 수술실·중환자실 연계, 인수인계와 보호자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든 과정이 24시간 기준으로 재설계 돼야 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인력이다. 야간 전담 수의사를 구하기 어려워 일부 병원은 인력 사정에 따라 야간 운영을 중단하거나 재개하기도 한다. 장기적인 야간 근무는 수면장애와 번아웃을 유발할 수 있으며, 피로 누적과 이직으로도 이어진다. 

운영비 부담도 크다. 전기·설비비, 야간 수당, 인력 충원 비용이 모두 증가해 수익 구조가 1인 병원보다 못하다는 곳도 많다. 응급 진료비나 야간 진료비 명목으로 추가 요금을 부과하고는 있으나 보호자 부담에 한계가 있다.

24시청담우리동물병원 윤병국 원장은 “24시간 병원을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야간 근무가 잦은 직원들의 근속을 위해선 안정적인 백업 시스템과 효율적인 인사 구조가 필요하다”며 “규모 확장보다 노무·재고·CS 등 질적 기반을 먼저 다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의사들은 “밤에도 환자를 외면할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현장을 지키지만 응급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동시에 상대하며 신체적 피로와 감정적 소진이 겹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설명의무, 치료결과가 얽히면 법적 부담까지 더해진다. 보호자에게는 든든한 존재지만 수의사에겐 24시간 병원은 무거운 책임인 셈이다.

24시 병원의 확산:
수도권 집중과 지역 격차

2025년 기준 병원명에 ‘24시’를 포함한 기관은 전국 182곳으로 확인됐다. 2016년 85개소에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 검색 기준. 다만 이 통계는 병원명 기준으로 실제 24시간 상시진료 체계를 모두 반영하지는 않는다. ‘24시’ 명칭이 있어도 야간 인력이 없는 곳이 있고, 반대로 이름에 포함되지 않아도 24시간 체계를 유지하는 병원도 있음을 밝힌다).

이 가운데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117곳(64.3%)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경기(56), 서울(46), 인천(15)순이었으며, 대구(13), 부산(12), 광주(10)가 뒤를 이었다. 서울은 강남구 6곳, 강서·동작·강동·양천·구로구 각 3곳, 경기도는 화성(6), 남양주(5), 시흥(4)곳 순이었다. 의료 수요와 교통 접근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24시간 병원이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수도권 밖으로 가면 상황은 다르다. 중소도시는 1~3곳 수준에 불과해 실질적으로는 몇몇 거점 병원에 의존한다. 대구24시바른동물의료센터 이세원 원장은 “지방은 수도권보다 응급환자를 빠르게 처리할 병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주변 병원 간의 긴밀한 리퍼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24시간 진료체계는 지역 간 응급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적 과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많은 병원이 인력 규모와 진료 여건을 고려하며 ‘지속 가능한 24시 병원’으로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리한 확장이 아니라 병원의 역량 안에서 환자 안전과 의료진의 삶을 함께 고려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