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일 원장 칼럼⑭] 동물병원에서
진료비 상한액 설정법안, 수의의료 본질을 훼손한다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남중원)이 대표발의한 ‘동물 진료비 상한액 설정을 위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수의계 안팎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법안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시한 ‘동물 진료 권장 표준’(질환 3,511종·진료행위 4,930종)을 기반으로 항목별 상한액을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호자의 진료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이는 실제 수의의료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다.
이 의원은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이 낮고 진료비 부담이 크다”는 점을 근거로 상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물진료의 특성과 진료비 구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제는 ‘상한액’이라는 기준이 동물병원의 의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수의의료는 진료의 다양성과 환자의 개체차가 매우 커 동일 질병명이라도 필요한 진단과 치료 과정이 크게 달라진다.
복부초음파 한 케이스라 하더라도 장비 수준, 검사자의 숙련도, 병원별 인력구성, 임상적 난이도에 따라 실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내과·외과·영상의학 등 진료과목을 불문하고 수의의료는 의학적 판단에 기반한 선택이 매 순간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고양이 만성 구토 환자에서 단순 대증치료로 끝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심장질환, 신장질환, 림프종 등 다양한 질환을 감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혈액검사, 영상진단, 입원 관리 등 여러 절차가 필요해지며 이는 보호자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복잡성은 단순히 ‘하나의 상한액’으로 정의될 수 없다.
더욱이 사람 의료와 달리 동물병원은 보험 수가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비용이 자율 시장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한액을 법적으로 규정하면 인건비, 장비 유지비, 약품비, 임대료 등 병원 운영요소를 반영하기 어렵고, 결국 ‘난이도가 높은 진료일수록 손해가 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 전문위원실 또한 “지역, 병원 규모, 진료 난이도의 차이를 상한액이 적절히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수의사의 전문성과 의료적 판단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체별 상태가 다른 환자를 일률적인 상한액 안에서 진료하게 되면 보다 정확한 진단이나 안전한 치료를 선택하는 데 제한이 생길 우려가 크다.
이는 결국 보호자와 환자가 누려야 할 치료의 질을 제한하게 된다.
상한제 도입은 사회적으로는 ‘비용 절감’이라는 단기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전문인력의 이탈, 진료 인프라 축소, 고품질 의료 제공의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응급·중환자·노령동물 진료와 같이 시간·장비·인력이 대량 투입되는 분야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된다.
반려동물 양육가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반려동물의 평균 수명도 길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진료의 전문화, 세분화, 고도화는 필연적인 방향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진료비 상한제’는 수의의료의 발전 속도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논의는 단순한 진료비 문제가 아니다. 동물진료를 ‘가격 중심의 서비스업’으로 볼 것인지, ‘생명을 다루는 전문 의료’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다. 수의의료의 본질이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진료비 상한제를 강행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의 수의의료는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으며, 이를 유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용·인력·장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 가치를 사회가 이해하지 못한 채 가격만을 조정하려는 접근은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정책 논의가 이어지는 만큼 이번 법안이 동물진료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반려동물 진료비 문제는 ‘단순 규제’가 아닌 정확한 구조 분석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동물도, 보호자도, 수의사도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