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좀, 혁신적인 가능성 규제에 갇히다
수의계 “효과 확실” Vs. 검역본부 “허가 없으면 불법” Vs. 업체 “임상 데이터가 우선”
최근 수의계에 엑소좀(Exosome) 제제가 새로운 치료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양한 난치 질환에서 뚜렷한 회복 효과가 보고되면서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규율할 법적 기준이 없는 탓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검역본부는 품목허가 없는 엑소좀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강력한 단속을 예고한 반면, 임상수의사들은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 합법적 활용 경로부터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제조 업체들 역시 연구용 공급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해야 허가를 요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논쟁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같은 기술이 인의에서는 혁신으로 평가받고,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하게 활용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수의계·업체·규제기관 간 갈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검역본부, 현장점검 강화
검역본부는 「약사법」 제31조와 제85조, 「동물용의약품등 취급규칙」에 따라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엑소좀은 ‘불법’이라는 입장으로 이미 일부 제조업체를 점검했으며, 불법 유통이 확인될 경우 즉각 조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제조업체들은 엑소좀은 의약품 원료가 아니라 예방·건강관리 목적에 가까운 재생 물질이며, 공급 또한 대부분 동물병원의 연구용 신청에 따라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상담 후 연구 목적 사용을 계약서에 명확히 기재하고, 보호자 동의와 결과 제출까지 포함된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검역본부는 연구용이라 해도 품목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이나 신약개발 목적의 기초연구라면 참여가 가능하지만, 연구계획서·공동연구계약서·윤리위원회 심의·보호자 동의 등 필수 요건을 갖춰야 하고, 특히 연구 명목으로 공급된 제품이 상업적 판매나 치료행위로 이어질 경우 불법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이다.
업체들은 이러한 기준에는 동의하되 연구 목적의 공급 역시 일정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표 A씨는 “엑소좀은 고가 장비와 정교한 공정을 거쳐 생산하며, 제품의 변질을 막기 위해 의약품 수준의 콜드체인 체계로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무료 제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정 대가를 받더라도 영리 판매 목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임상 현장 이미 엑소좀 효과 뚜렷
엑소좀은 세포에서 분비되는 미세한 입자로 세포 간 정보를 전달하거나 조직 재생, 면역 조절 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자체 배양 인프라가 없어도 다른 의약품처럼 주문할 수 있다는 간편함도 강점이다.
수의계에서는 이미 엑소좀의 효능이 줄기세포와 유사하면서도 조직 회복 속도 측면에서는 훨씬 더 빠르다는 입장이다.
수의줄기세포&재생의학연구회 회장인 박천식(아리스타동물의료센터) 원장은 “엑소좀은 신장 질환, 아토피, 만성 구내염, 피부 괴사, 각막 궤양, 심장 질환, 골 질환 등에서 기존 약물과 병행 시 눈에 띄는 회복 효과를 보인다”며 “세계적인 논문에서도 엑소좀의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최근 세미나에서 엑소좀 기반 동물용 화장품을 샘플로 제공했더니 몇 달간 치료해도 효과가 없던 피부질환자에게 이틀 만에 효과를 보인 사례도 있다”며 “임상에서 검증되는 치료 가능성을 규제로 묶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합법적 활용 위한 기준 필요
엑소좀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규제 마련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주체별로 접근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검역본부는 엑소좀 제제는 품목허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통과해야만 제품 품질을 보장하고 불법 유통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엑소좀을 원료로 한 품목허가 신청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제조업체들은 충분한 사례를 누적하고,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마련해야만 품목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임상 현장에서 사례가 일정 규모 이상 쌓여야 비로소 허가 서류도 작성할 수 있다”며 “현재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허가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의 분야에서도 여러 국내 엑소좀 기업들이 식약처를 통해 임상시험을 추진했지만 생산·품질관리(CMC) 기준을 표준화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년째 임상 승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비춰볼 때, 데이터 축적과 병행해 최소 기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천식 원장은 “제조기관 시설 요건, 파티클 수·사이즈, 기원(세포·조직) 명시, 효력시험, 보관 규격 등 최소한의 기준만 정해도 혼란이 크게 줄어든다”며 “일정 품질이 확보된 제품은 제한적으로라도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만 강화된 채 협력 부족
검역본부는 2018년부터 ‘동물용 세포치료제 안전성 평가 가이드라인’을 운영해왔으며, 곧 신약 개발 및 인허가 지원을 위한 ‘동물용 세포외소포치료제 품질·비임상·임상 평가 가이드라인(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에 앞서 수의계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천식 원장은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임상 의견이 반영돼야 하지만 실제 논의나 협력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조업체들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현재 검역본부가 운영 중인 줄기세포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고도화된 요건으로 구성돼 있어 사실상 일정 설비와 규모를 갖춘 대형 기관만 충족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중소 규모의 제조사나 연구기관은 현실적으로 접근조차 어렵기 때문에 “결국 혜택은 특정 병원이나 대형 연구시설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구조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제도권 안으로 유입시키는 촉진 효과보다 오히려 초기 진입 장벽을 높여 혁신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엑소좀 제제와 같은 혁신적인 치료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규제가 우선시 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필요한 치료를 적시에 제공하기 어렵다.
무조건적인 단속보다는 먼저 안전성 및 품질 기준을 마련해 검증 가능한 제품이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기관의 높은 허들로 인한 피해는 결국 동물과 보호자에게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