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 여부 헌재에 맡긴다
마침내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 여부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그동안 진료기록부 공개와 관련해 수의계와 보호자, 정치권이 팽팽한 입장차를 보여왔는데 결국 보호자가 국회를 상대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이제 판단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사건을 지정재판부에 배당하고 청구 적격성과 심판의 필요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재판부 3명의 재판관 중 1명이라도 전원재판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위헌 여부 심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따라서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렇게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서로의 대립 관계를 도저히 좁힐 수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맡기게 된다. 이 같은 사례는 의료계에서도 종종 있었다.
소비자와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릴 때도 헌재에 그 판단을 맡기는 경우들이 있다.
치과전문의제도의 경우 수련교육을 받은 치과의사와 교육을 받지 못한 치과의사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면서 5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전문의제 도입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전문의가 생길 경우 일반 G.P들은 개원가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50년 만에 대학 교수들이 헌법재판소에 헌소를 제기하면서 치과전문의제는 결국 도입됐다.
하지만 헌재에서 전문의제 도입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고 해서 일반 개원의들이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치과전문의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결국 치과의사들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치과의사들은 전문의를 8% 소수 정예로 의결하면서 전문의제도는 시행하지만 전문의의 의미가 없는 길을 선택했다.
의사들이 80%가 넘는 다수 전문의제도를 시행하면서 전문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 것과 같은 길을 간 것이다.
사실 치과전문의제 도입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을 내리게 된 데에는 소비자들의 알권리가 한 몫 했다. 이번에 헌소를 제기한 보호자 역시 수의사법에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알권리 침해와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의료는 사람 의료와 엄연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고, 수의사 처방전 없이도 동물용의약품 구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항생제 등 약물 오남용으로 인해 동물은 물론 국민의 건강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자가진료가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료기록부를 공개할 경우 더욱 만연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진료기록부를 공개하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즉, 수의사 처방제 확대와 정착, 수의료 용어와 치료방법 및 기록방법의 표준화 등 제도적 장치들이 보완돼야만 진료기록부 공개도 가능하다. 때문에 보호자의 알권리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진료기록부 공개 의무 규정에 합헌을 내리기엔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들이 너무나 많다.
설사 합헌이 되더라도 구체적인 규정 내용에는 수의사들의 목소리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따라서 수의계는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제도로 규정될 수 있도록 헌재의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을 먼저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