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호 교수의 영화이야기 (23)] 세계의 주인(2025)

주인이 만든 세계 통해 모두가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마법

2026-01-26     개원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난 듯 하다. 지난해는 유난히 뭘 했는지 모르게 매사를 마감에 맞춰 헉헉대다 보니 영화관에 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명감독의 대작 중심으로 약간은 의무감에서 극장을 찾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독 이름 하나 보고 주저 없이 극장을 찾게 된 된 영화가 바로 ‘세계의 주인’이다. 

이 작품은 유독 어린아이의 시선에 맞춘 영화로 주목을 받은 윤가은 감독의 영화 치고는 출연진이 성인들로 구성된 영화이기도 하다(배우들이 맡은 역할은 고등학생이지만 한눈에 봐도 다 성인배우이다). 그러기에 영화 시작하자마자 뜬금없이 등장한 고등학생들의 키스신은 다소 낯설었다.

영화는 초반부에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지 감을 잡기 좀 어렵다. 그러다 중반이 지나면서는 주인공에게 몰입하며 주변의 상황에 조마조마하게 되며, 후반부로 이어지면서는 또 다른 주변 인물들에 감정이 이입되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마법 같은 영화이다.

주연인 서수빈 배우는 신인배우임에도 마치 이 역할을 위해 오래 준비한 배우처럼 제 역할을 잘 소화했는데, 심지어 배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도 태권도를 한다고 한다(감독이 서수빈 배우의 태권도 경험을 알고 배역에 녹여낸 것인지 경험자를 주연으로 발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엄마 역의 장혜진 배우나 주인의 단짝 친구인 강채윤 배우(공유라 역), 태권도장 선배이자 주인과 비슷한 서사가 있는 고민시 배우(한미도 역), 주인의 남동생 해인을 맡은 이재희 아역배우, 주인과 티격태격하는 같은 반 친구인 김정식 배우(장수호 역) 등 모두가 마치 그 역할을 위해 준비된 듯 연기의 흐름에 굴곡이 없어 보였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 역량도 물론 컸겠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전작들에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마음과 함께 끄집어내는 감독의 힘이 성인 연기자들에게도 잘 먹혀 들어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제목인 ‘세계의 주인’은 다분히 중의적으로 보인다. 이 세상의 주인은 다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있다는 뜻도 될 것이고, 주인공 이름이 이주인 인데 과거는 과거에 남기고 새로운 세계에 이주하여 삶을 개척하고 살아가는 이주한 사람이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제목을 도치시키면 주인의 세계이기도 한데 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영화 속 ‘주인’의 세계를 선입견 없이 온전히 경험하고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며 그 세계의 주인이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게 하기에 이야기를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작년 한해 한국영화 중에서 한편을 뽑는다면 ‘어쩔 수가 없다’ 보다(물론 이 영화도 너무나 훌륭하다) 필자는 단연 ‘세계의 주인’을 뽑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극장은 혹시 못 갔더라도 OTT로라도 꼭 한번 관람하면 좋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모두가 주인의 세계로 들어가 다 함께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