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의사 진료권은 왜 늘 예외인가

2026-01-26     개원

 

 

동물의료 현장에서 수의사들은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약을 내가 처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진단과 치료, 예후 관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의료인에게 진료의 핵심 수단인 의약품만큼은 늘 불완전한 권한으로 남아 있다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제도는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대신 약사법이라는 이름의 법체계가 동물의료 깊숙이 개입하며 수의사의 전문 판단과 책임 구조를 지속적으로 흔들어 왔다. 이 사안을 직역 간 갈등으로 축소하는 순간, 논의는 본질을 놓치게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충돌의 핵심은 ‘수의사 대 약사’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의료를 독립된 의료로 인정하지 않아 온 국가 제도의 구조적 한계다.

약사법은 사람 의료를 중심으로 설계된 법이다. 그 틀 안에서 동물용 의약품은 오랫동안 부속적 항목이거나 예외 규정으로 다뤄져 왔다. 이 과정에서 수의사의 진료 행위는 독립된 의료 행위로 존중받기보다 약사법의 해석에 따라 허용되거나 제한되는 대상으로 취급돼 왔다.

수의사는 진단과 치료의 최종 책임을 지지만 약물의 사용과 관리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외부 통제를 받는다. 처방 대상 품목 확대를 둘러싼 논란, 약국 예외 규정, 비처방 판매 문제는 모두 이 모순적인 체계가 반복적으로 표면화된 사례다.

최근 수의사들이 체감하는 위협은 더욱 명확하다. 책임은 수의사에게 집중되지만 권한은 끝내 명확히 부여되지 않는 구조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약물 오남용, 부작용, 항생제 내성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는 수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약물의 유통 구조와 접근 권한에 대해서는 수의사의 통제권이 제한돼 있다.

이는 의료의 기본 원칙과도 어긋난다. 진료 행위와 처방·관리 권한은 분리될 수 없다. 책임을 지는 주체에게 판단과 관리 권한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동물의료 영역에서는 이 원칙이 반복적으로 무시돼 왔다. 수의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다. “동물의료의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수의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혜도, 직역 이기주의도 아니다. 동물의료의 특수성을 인정하라는 최소한의 요구다. 동물은 스스로 증상을 설명할 수 없고, 보호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료가 이루어진다. 

종별·개체별 약물 반응의 차이도 크다. 이러한 복합적 조건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전문가는 수의사다. 그럼에도 사람 의료를 기준으로 설계된 약사법의 잣대로 동물의료를 재단하는 현재의 구조는 진료의 질과 안전성 모두를 동시에 훼손한다.

이제 이 문제를 더 이상 해석의 차이로 넘길 수는 없다. 약사법 조항 하나하나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동물의료를 독립된 의료 영역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택의 문제다. 수의사의 진료권과 처방권을 명확히 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 체계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환돼야 한다.

대한수의사회 역시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어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해명하고 대응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물의료 전반을 포괄하는 명확한 원칙과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약사법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수의사의 진료 주권을 기준으로 제도를 재설계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동물의료는 더 이상 부수적인 영역이 아니다. 1500만 반려동물 시대, 수의사는 이미 공공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요구받는 의료인이다. 그럼에도 법적 지위와 권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피해는 결국 보호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약사법과의 충돌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미뤄온 결과가 오늘의 혼란이다. 질문은 이미 충분히 던져졌다. 이제 남은 것은 수의계와 제도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선택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