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회생신청’ 급증, 남일 같지 않은 '수의계'

2014-08-07     박천호 기자


최근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거액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법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이유는 병원 개원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병원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인데, 현재 수의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 없게 됐다.


동물병원 개원 시 무리한 투자가 원인
시중은행 대출장벽 높기만해 … 고금리 수의사 대출 봇물 ‘주의’

 

지난 7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일반회생을 신청한 1,327명 가운데,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40%를 넘는 548명이다. 전문직 종사자의 일반회생 신청은 2009년 93건, 2010년 83건, 2011년 108건, 2012년 114건, 2013년 99건이다. 올 상반기에만 벌써 51명이 일반회생을 신청했다.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는 담보채무 액수 10억을 초과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일반회생인 점을 감안할 때 개인회생을 포함한 전국적인 신청 건수는 이미 수백 건 이상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과거 개인사업자 등 회사 관계자들이 주로 회생을 신청했지만 의료계 불황이 길어지고, 개원가 포화상태에 따른 원장들 간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의 회생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테리어·장비만 1억 원 이상
최근 동물병원 개원 형태를 보면 넓은 공간에 깔끔한 인테리어와 최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 또는 큰 규모의 공동개원으로 나뉜다.

단독개원과 공동개원 모두 투자비용이 예전에 비해 많이 상승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테리어와 장비 비용만 1억 원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리한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

반대로 시중은행들은 수의사들에게 예전처럼 무조건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수 년차 페이닥터가 개원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가운데 ‘수의사 전용 대출’을 내세워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 유혹이 넘쳐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수의사 대출’을 검색하면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 상품과 관련한 게시물이 수 십 여개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개원을 앞두고 있는 예비 원장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금리로 목돈을 빌려 경영을 하면서 부채를 갚아나가던 선배들과 달리 높은 금리를 조건으로 목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계 한 컨설턴트는 “사정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동물병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공급이 증가하면 기존에 우대 금리를 받아 왔던 전문 직종 대상 특판 금융상품도 감소하게 된다”고 말했다.
 

개원 후 건물주 횡포 골머리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일부 수의사들은 개원 후 건물주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건물주가 큰 폭으로 임대료를 인상하며, 사인하지 않으면 나가라고 종용하는 경우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지난해 말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도 실제 동물병원 원장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임대료 폭탄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병원 원장들을 포함한 사업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년 넘게 동물병원 개원 컨설팅 및 주요 장비를 납품해왔다”는 한 개원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동물병원 이전 얘기는 종종 들어왔지만, 폐업 얘기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면서 “하지난 지난해부터 ‘00동물병원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폐업했다’ 혹은 ‘과도한 초기 투자비용으로 000병원이 1년 만에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개원가의 경영악화로 부채를 안고 시작하는 동물병원 원장들이 증가하면서 대부업체들의 유혹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의료계 전반적으로 개인회생이나 파산, 폐업 등의 경고 메시지가 잦아지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현명한 선택과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