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과대학 교육과정 이대로 좋은가
학생들 커리큘럼 불만 갈수록 커져 … 현실에 맞는 임상과목 비중 늘려야
수의과대학의 교육 커리큘럼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져가는 가운데 수의과대학 교육과정도 시대 흐름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려동물시장의 급성장으로 수의과대학에 대한 학생들이나 사회적인 관심은 크게 높아졌지만, 실상은 학생들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결국 타과로 전과하거나 졸업 후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막상 수의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수의과대학에 들어왔지만 6년 과정 내내 기초와 예방 교육에만 치중해 있고, 정작 중요한 임상은 거의 배울 기회조차 없어 수의과에 흥미를 잃어 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정작 임상 배울 기회 없어
수의학은 애초 축산학에서 비롯되면서 내과, 외과, 산과, 방사선과 등 ‘기능’보다는 ‘형태학’에 치중해 지금까지 그 교육과정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수의학은 종양, 신경, 내분비, 피부 등 모든 기능을 진단하는 훨씬 더 넓은 분야인데도 대학과정에는 내과계열로 단순 분류돼 있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모 교수는 “내과만 해도 엄청나게 넓은 분야인데, 한두 명의 교수가 이 모든 분야를 다 교육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럼에도 이런 형태학적인 교과과정이 고착화돼 임상과목의 세분화는커녕 심지어 대동물, 소동물로 단순 분류해 교수 충원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라며 “수의학은 기능적으로 접근하면 엄청나게 커질 수 있는 분야임에도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수는 “미국의 경우 1~3학년까지 수업을 하고, 4학년 때는 아예 수업 없이 병원에서 1년 내내 진료만 하면서 최소한 졸업 후에 바로 지역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며 “우리는 4년 내내 강의만 듣고 실제 임상에 나가서는 백신 하나 놓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타 전문직과 상대적 박탈감
수의과대학은 지난 90년대 말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으나 4년 교육과정을 6년으로 기간만 늘렸을 뿐 커리큘럼의 변화가 전혀 이뤄지지 못해 지금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모 대학 학장은 “의사 등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 수의과대학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불만이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는 타 전문직에 비해 교육과정 자체가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수의사로서 비전이나 전망을 기대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 수의과대학 학생 중 10% 정도가 의대로 진로를 바꿀 정도로 수의학의 인기는 떨어지는 징조를 보이고 있다.
모 교수는 “현재 수의과대학의 인기는 다운그레이드 치고 있다. 이는 철저히 잘못된 공급자 중심의 교육 때문”이라며 “수의학 중심의 교육으로 가야만 졸업 후 진료 현장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대학 임상과정 도입
수의과대학 학장 대부분이 기초전공자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의과나 치과대학 학장 대부분이 임상전공자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A 원장은 “대학에서 임상을 배우지 못하다 보니 졸업 후 페이닥터로 일하면서 그제 서야 임상을 배우지만 이 또한 열악한 상황이어서 다시 대학원 문을 기웃거리거나, 개원을 해서는 주말과 밤마다 세미나장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어 결국 삶의 질이 떨어진다”며 “대학 6년에 석, 박사까지 수의사가 되려면 최소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수의과대학을 가고 싶어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기초 분야 교육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수의사들에게 임상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상교육과 필수과목의 도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행히 일부 수의과대학에서 선택과목으로 피부, 종양, 행동학 과정을 도입하거나 마지막 학년에 임상을 집중 배치하는 등 변화의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