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불가한 만큼 수의사와 보호자와의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원한 환자의 기본 정보와 질병 이력, 증상 등도 보호자 상담을 통해 이뤄지고, 환자 예후에 대한 정보도 보호자를 통해 얻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수의사와 보호자 관계에 있어 라포(Rapport)를 쌓는 것은 필수적이다. 라포가 깊게 쌓일수록 치료 결과도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부 권위와 독선으로 보호자를 대하는 수의사가 있는가 하면 수의사를 불신하면서 방어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보호자도 있다. 어느 한쪽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데 수의사와 보호자 모두 대화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수의사들은 권위적인 말투에서 벗어나 보다 부드럽게, 보호자들은 수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것이 필요하다.
■ 거울효과·아이컨텍·몸의 기울기 중요
지난 2016년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이 동물병원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수의사가 친절하게 응대할 경우 미용이나 호텔과 같은 부가서비스도 함께 이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보호자 상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동물병원의 매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보호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하는 이유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거울효과(Mirror Effect)’를 활용하면 보호자와의 라포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거울효과란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자연스럽게 따라하면 상대가 친근감을 느껴 나에게 더욱 호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보호자에게는 자신의 견해와 의견들을 충분히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고, 무언가 경계심을 갖고 있는 보호자에게는 차분한 말투와 웃는 인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아이컨택을 하며 보호자의 감정을 같이 느끼고, 몸을 보호자 쪽으로 살짝 기울이는 것도 좋은 소통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사소한 증세나 의견에 대해서도 성심성의껏 들으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보호자에게 치료 절차를 설명할 때는 환자가 이해하고 있는지 중간중간 확인해 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보호자가 말을 하는 데 너무 느리거나 답답할 수 있어도 이때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설명이 너무 길어진다면 평소 테크니션과의 신호를 만들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상담 중 테크니션이 들어와 ‘원장님 예약 환자 대기 중입니다’라는 말을 전하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멈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 온라인 수의학 정보 맹신 금물
보호자들도 수의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권위를 흔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전현영(이화여대), 박소정(뉴욕 호프스트라대) 연구원이 진행한 ‘임상수의사의 직무스트레스 연구’에 따르면, 보호자와의 상담을 통해 환자의 정보를 얻어야 하는 특수한 진료환경은 수의사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보호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에서 얻은 부정확한 수의학 지식을 기반으로 상담을 진행해 수의사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렇게 되면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아픈 환자다. 적절한 시기에 진단과 치료가 이뤄진다면 빠르게 회복됐을 질병을 보호자의 고집으로 병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보호자들은 수의사를 믿고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지름길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수의사에게 원하는 사항을 이야기하되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수의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수의사의 행위도 실제로는 꼭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차분히 기다리고 설명을 듣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