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칼럼②] 원격진료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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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칼럼②] 원격진료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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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55호] 승인 2023.09.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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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부터 정부는 사람에서 일부 초진 환자들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원격진료(virtual visit)’는 원격의료(telemedicine) 안에 포함된 개념으로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전화 상담 및 처방을 하는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KB금융그룹에서 발행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가 ‘원격의료 상담 서비스’와 ‘원격진료 서비스 이용’ 의사를 밝혔고, ‘1인 가구’ 48.6%가 원격진료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반려동물 원격진료가 도입이 된다면 시공간 제약 없이 편리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언제 어디서나 상담받을 수 있고, 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으며, 직접 방문하는 것에 비해 진료비를 아낄 수 있다. 

반면 오진 위험성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동물과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다는 단점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동일한 수의사에게 처치를 받은 만성질환자의 경우 주기적인 약 처방을 원격진료로 받을 수 있으나 이 역시 대면진료가 진행되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보건복지부도 원격진료는 대면 진료를 보조하는 역할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원격의료가 활성화 돼 있는 미국에서도 미국수의사회(AVMA)는 대면진료를 통해 충분한 의학적인 정보를 얻은 환자에 한해서만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또 의료영리화 문제와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원격진료 플랫폼은 수익 창출을 위해 환자를 유인하거나 호객하는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의료의 질이 저하되거나 의료비가 상승할 수 있다. 또한 원격진료를 통해 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약물들이 오남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수의사가 진료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대면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사고의 발생 확률이 높다. 보호자가 설명한 증상만 믿고 처치했다가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뿐 아니라 모니터링 기계에 문제가 있어도 모두 수의사의 책임이 된다. 이로 인해 수의사는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의료비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의사법상 수의사의 원격진료는 불법이다. 해외에서는 반려동물 원격진료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등 외국에서는 원격의료가 활성화 됐으며, 이미 국내에도 단순히 수의사가 상담해주는 서비스는 많이 존재한다. 원격진료가 국내에 들어온다면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뿐만 아니라 대형 동물병원만 살아남는 동물병원의 양극화를 유발할 수 있다. 1인 동물병원은 살아남을 수 없고, 더 나아가 같은 지역 내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커질 확률이 높다. 

코로나19 때 허용된 비대면 진료에서는 약의 배달이 가능했지만 6월부터 시작된 시범사업에서는 무조건 약국에서 직접 수령만 가능하다. 약사법상 동물용의약품도 인체의약품과 마찬가지로 택배배송은 불법이다. 그러나 진단키트 등 동물용의료기기, 치료보조사료, 동물용 의약외품은 택배 배송이 가능하다. 만약 원격진료가 도입되고 외국처럼 동물약도 택배가 된다면 동물약국은 어떻게 될까? 동물약 역시 약국에서 직접 수령할 가능성이 높다. 동물약국의 개수가 올해 1만개 이상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약사회 연수교육에도 동물약 관련 강의가 필수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약사회는 동물약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가장 중요한 약사예외조항 철폐도 힘든 상황에서 동물약의 택배 배송 역시 어떻게든 막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진료비 경감을 목적으로 반려동물에서도 원격진료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여러 동물병원들의 네트워크를 강점으로 내세웠던 Bondvet처럼 국내에서도 몇몇 동물병원 그룹에서 충분히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대한수의사회는 국민들을 잘 설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지방에서의 동물병원 접근성은 어떤지, 어떤 항목에 한해 원격진료를 실시할 건지 등 심도 깊은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2021년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립대 수의대에서는 임상 로테이션 중 하나로 학생들이 직접 의료취약 계층과 원격진료를 실시해 보호자와 학생들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것에 한해 본과 4학년 학생들이 도서산간 지역에 위치한 반려인들과 원격진료를 시도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만약 반려동물 원격진료 서비스가 도입된다면 사람에서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바 있는 스타트업들이 뛰어들 가능성도 높다. 닥터나우-대한의사협회, 직방-공인중개사협회, 로톡-대한변호사협회 등 스타트업과 기존 직역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반려동물 원격진료가 도입된다면 대한수의사회 역시 해당 스타트업과 갈등을 빚을 확률이 높다. 시대 흐름에 맞는 혁신도 중요하지만, 수의사들의 진료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도록 대한수의사회가 열심히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  


※ vetfi.org에서 전체 원문 읽기 가능, 수의미래연구소 [벳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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