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동물복지는 더 이상 일부의 관심사가 아닌 대중정치의 주요 의제가 됐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공약은 꾸준히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들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내놓은 반려동물 관련 공약들을 분석하고, 실현 가능성과 향후 과제를 조명해봤다.
‘진료비 경감’ 공통 공약 눈길
이번 선거에서는 다양한 반려동물 관련 공약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동물복지 선진국’ 공약을 직접 발표하며 “동물보호를 넘어 복지 중심 체계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 동물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생애주기 관점에서 건강과 영양, 안전과 습성을 존중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동물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려동물 양육비 부담 경감 △반려동물 등록률 제고 및 인프라 개선을 통한 보험제도 활성화 △학대 및 유기 방지 △농장동물과 동물원·실험·봉사·레저·동물의 복지 개선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재명 후보는 “반려동물의 병원비가 월평균 양육비의 40%에 이르러 경제적 부담이 큰 만큼 표준수가제를 도입하고, 표준 진료 절차를 마련해 진료비 부담을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표준수가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김문수(국민의힘) 후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반려동물 정책’을 통해 △동물병원에서 제공하는 모든 의료 서비스 항목 표준화 및 온라인 게시 △펫보험 상품 다양화 및 보장 범위와 지원 조건 개선 △펫티켓 문화 확산 △반려동물 연관 산업 연구 개발 및 수출 지원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김 후보는 “1인 가구와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울증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우리의 소중한 일원이자 따뜻한 가족 구성원”이라면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권영국(민주노동당) 후보는 유일하게 민법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 개선을 약속했으며, 헌법 개정 시 헌법에 동물 보호의 의무를 명시하고, 독립된 국가기관인 ‘동물청(가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준석(개혁신당) 후보는 동물복지 및 반려동물 관련 공약을 별도로 내놓지 않았다.
공약과 정책 사이 간극 해소해야
문제는 ‘공약’과 ‘정책 실현’ 사이의 간극이다. 특히 표준수가제는 이전부터 꾸준히 도입이 논의돼 왔으나 수의계의 반대와 시장 자율성과의 충돌로 난항을 겪고 있어 반려동물 관련 공약에 대해 수의사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매우 냉정하다.
대한수의사회(회장 허주형, 이하 대수회)는 △반려동물 등 공공동물건강보험체계 수립으로 동물복지 강화, 시민부담 완화 및 공중보건 증진 △반복되는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의 근원적인 해결과 항생제로부터 안전한 국민 안심 축산물 공급을 위한 농장 전담 수의사제도 도입 △예상되는 동물유래 보건위해(코로나 팬데믹, 내성균 등) 방지를 위한 동물질병 전담 조직인 ‘동물질병청’ 신설 등을 각 정당에 정책으로 제안했으나 실제 후보들이 발표한 공약에는 해당 내용들이 거의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대부분의 대선 공약들이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며, 동물진료의 최전선에 있는 수의사나 실제 반려동물 양육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허주형 회장은 “수의사는 반려동물 진료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가 방역체계, 축산물의 안전과 위생 관리,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대응, 동물복지, 국민 보건과 안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공공 영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동물의료 분야는 여러 제도적 미비와 공공 인프라의 부족, 민간 진료 영역에 대한 불합리한 공공 개입으로 구조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대수회는 여러 과제들이 국정 과제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각 정당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려동물 복지는 단지 정서적 공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수의사와 반려동물 보호자, 관련 산업 종사자 등의 지속적인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 공약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본격적인 정책 설계와 이행, 그리고 현장과의 소통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