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동물 의료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동물병원은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영리법인 병원 개설 제한, 진료비 공시·게시 의무 및 표준수가 논의까지 이어가고 있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산업의 자율성과 혁신을 억누르는 족쇄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영리법인 동물병원 개설 금지
현행 수의사법은 영리법인의 동물병원 개설을 금지한다. 2013년 법 개정으로 2023년까지 모두 비영리나 개인사업자로 전환해야 했다. 대한수의사회(이하 대수회) 역시 이를 “의료 상업화 차단”이라는 성과로 평가하며 지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리법인 허용’ 요구가 커지고 있다. CT·MRI 등 고가 장비 도입과 응급·중증 진료 체계를 위해서는 개인 단위 개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대·인테리어·장비 등 초기 비용이 크게 늘면서 공동개원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득세율 차이로 인해 병원이 성장할수록 수의사 개인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부작용도 지적된다.
반면 중국은 영리법인을 허용하며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였고, 신루이펑(New Ruipeng) 그룹은 전국 90여 개 도시에 약 1,600개 병원을 네트워크화 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진단·교육·플랫폼까지 아우르는 ‘원스톱’ 모델을 내세워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자본 유입을 차단한 한국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진료비 공시·게시 의무
정부는 2023년부터 진료비 게시를 의무화했고, 2024년에는 1인 병원까지 확대했다. 2025년에는 대상 항목이 20개로 늘어났다. 온라인 게시도 병행해야 하며, 조사 결과는 ‘동물병원 진료비 현황 공개 시스템(animalclinicfee.or.kr)’을 통해 항목별 최저·최고·평균·중간값까지 공개되고 있다.
대수회는 “현장 파악 없이 규제를 도입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홈페이지 게시 의무화는 소규모 병원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다. 별도의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자료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고, 게시 항목이 늘어나면서 인쇄물 제작·갱신 관리 등 행정적 부담도 커졌다. 또한 보호자가 게시 자료를 기준 삼아 문제를 제기할 경우 오히려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대 수술 사전·사후 고지 의무
정부는 2022년부터 중대 진료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과 서면 동의를 의무화했고, 비용 사전 고지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앞으로는 모든 진료항목으로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사실 응급 상황에서 설명과 서면 동의 절차를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부는 수의사회의 건의를 반영해 “응급 시 수술 후 설명·동의를 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서류 절차가 신속한 처치를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진료비 표준수가제
정부는 2024년 다빈도 항목 20종에 대한 표준 진료절차를 고시했고, 앞으로 100여 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진료비 표준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병원마다 임대료, 인건비, 보유 장비, 수의사 역량이 크게 달라 비용 구조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진료비를 일률적으로 규정할 경우 병원 간 차별화가 약해지고, 서비스가 획일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수회는 “사람 의료처럼 공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현 체계에서 표준수가 산정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 가운데 동물진료비를 표준수가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 역시 펫보험 보급률은 높지만 진료비는 병원 자율에 맡겨져 있다.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수회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약사 예외조항과 자가진료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현재 불법 자가진료 단속이 느슨하고, 동물용의약품도 처방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진료기록이 상세히 공개되면 보호자가 이를 근거로 자가진료에 나서 동물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이 외에 동물용의약품, 동물용의료기기의 인허가 절차가 복잡하고 속도도 느려 최신 기술·장비의 현장 도입이 지체된다는 불만도 크다. 이처럼 국내 동물병원들은 규제 강화 속에서 자율성과 경쟁력이 위축되고 있다. 모두 보호자 권익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와 실효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공허한 규제로 전락할 가능성만 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