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호 교수의 영화이야기⑮] 그녀가 죽었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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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 교수의 영화이야기⑮] 그녀가 죽었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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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73호] 승인 2024.06.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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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관음증 환자이자 관종인 시대에

작품은 보여지는 사진과 영상을 일상의 소통보다 중시하는 최근의 소셜미디어 사용 행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영화로 전반부는 관음증을 가진 자, 후반부는 관종 사이코패스가 화자로 나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이다. 영화의 전개는 상당히 빠르고 상영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 몰입해 볼 수 있다. 최근 본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의 하나인데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신인감독이라는 게 뜻 밖이었으며 거대자본이 들어간 영화만 독점적으로 살아남는 시대에 맞설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한국 상업영화 모델이 아닐까 싶다.

변요한이 분한 구정태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부동산 블로거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한가지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면 중개업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불법적으로 훔쳐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는 대개 훔쳐보는 사람 집에 한두 번 몰래 들어가 하찮은 전리품을 하나 집어오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 한 가닥 양심이 걸려서 일까 몰래 들어간 집에서 청소를 한다거나 가벼운 수리를 한다거나 하는 기행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다 만나게 된 사람이 신혜선이 분한 한소라로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먹으며 소셜미디어에서 비건 흉내를 내는 소라에게 정태가 집착하게 되며 소동이 벌어진다. 

소라는 44만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로 럭셔리한 치장으로 자신을 뽐내면서도 길고양이를 돌보거나 채식주의를 표방하는 등 다 갖춘 개념녀 행세를 하는, 그러나 보여주기와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관종 인플루언서로 초기에 묘사된다.

소라는 정태에 의해 영화 초반에 시체로 발견되는데 관객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이 주인공 소라가 그렇게 죽으며 이야기가 전개될 리는 만무하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반전은 예측이 가능하긴 하지만 진부한 방향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남들의 일상,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다 들여다 보려는 사람과 실제 자기건 아니건,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이익을 취하려는, 그리고 그러한 생태계가 구축된 소셜미디어 시대에 너희는 그 중 어디에 속하는 지 관객에게 묻고 있다. 

젠더 갈등이 심각해진 시대에 극한의 관종인 여성을 연기한 신혜선 배우는 부담이 컸을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능청스럽게, 한편으로는 노련하게 이 역할을 잘 소화하였다. 역할과 관련하여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건 시나리오와 연출의 문제겠지만 소라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사가 너무 진부하다는 것이다. 이미 모두가 소셜미디어에 중독되어 누가 관종인지 누가 관음증 환자인지 구분도 불분명한 시대에 굳이 그러한 서사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두 명의 주연 외에도 세 번째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이엘은 소라의 죽음(처럼 보이는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이어나가는 형사인데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그가 특유의 중성적이고 건조한 톤으로 내뱉는 대사는 감독을 대신해 우리에게 하는 말 같다. 여럿이 같이 보고 나와 차 한잔 마시며 영화이야기 나누면 좋을 만한 작품이다.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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