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여야 하나요?”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이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비만, 신장질환, 피부질환, 당뇨 등 반려동물의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영양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료와 영양제 시장은 세분화·고급화되는 가운데 사료의 질과 급여량, 영양 균형을 평가하고 조정하는 일은 수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가장 필요로 되는 영역이다.
이에 따라 임상 현장에서도 비만 관리 클리닉, 만성질환 식이 지도, 노령동물 영양 코칭 등 영양 중심의 진료 프로그램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단순 진단-약 처방에서 벗어나 ‘진단–처방–식단–관리’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필수가 될 것이다. 수의사가 이제부터라도 영양학적 상담 역량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식단도 처방 필요” 보호자 인식 변화
보호자들은 사료를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건강 관리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반려동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펫푸드를 선택할 때 ‘수의사나 전문가의 추천을 참고한다’는 응답이 25%를 넘었다.
이는 가격이나 브랜드보다 높은 비율로 정보 과잉 속에서 수의사의 조언이 신뢰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부정확한 정보에 대항하는 학술적 근거에 기반한 지식, 실제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더 중요시하는 추세다.
한국수의영양학회(회장 양철호)는 매년 보호자 대상 ‘영양 세미나’를 개최, 보호자들은 질환별 식이 관리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다고. 학회 관계자는 “보호자들이 이제 ‘어떤 사료가 좋을까요’보다 ‘우리 아이의 질환에 맞는 식단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며 “단순한 제품 정보보다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관리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경쟁력 높이는 ‘영양 프로그램’
영양 상담을 진료의 한 축으로 운영하는 동물병원도 증가세다. 단순히 사료를 권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의 상태를 분석하고 장기적 식이 계획을 수립해주는 방식이다.
한성국(장튼튼내과동물병원) 원장은 “만성 장병증 환자의 상당수는 식이 변화만으로도 증상이 개선된다”며 “처방사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개별 상담을 통해 맞춤형 식이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바롬 펫뉴트리션클리닉처럼 생애주기별 영양상담만을 전문으로 진행하는 클리닉도 있다. 질병이 생긴 후의 처방이 아니라 건강할 때부터 함께 해야 하는 관리로 접근하는 흐름이다.
세미나로 확인된 영양학의 임상화
최근 세미나의 흐름은 영양학이 임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의영양학회 심화 세미나에서는 ‘만성질환 환자에서의 영양중재 적용’을 주제로 다뤄 실제 환자 관리 단계에서의 식이 전략에 대한 큰 관심을 입증했다. 양철호 회장은 “장기 관리가 필요한 환자일수록 영양중재의 정확성과 지속성이 예후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정설령 한국반려동물영양연구소 대표는 “이제 영양학은 치료 이후의 관리가 아니라 치료와 동시에 설계해야 하는 분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와 식단 잇는 ‘보이는 관리’ 필요
영양 상담이 병원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담 내용을 수치화하고 시각화하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IoT 급식기와 스마트 체중계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면 체중, BCS(신체 상태 점수), MCS(근육 상태 점수), 섭취량, 활동량 등의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양 관리 리포트’를 작성해 보호자에게 주기적으로 제공하면 식사량과 체중 변화가 한눈에 드러나 보호자의 이해와 참여도가 높아진다. 이는 상담의 연속성을 강화하고 재방문을 유도하며, 처방식·보조제·건강검진 등 후속 진료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반려동물의 종, 생애 주기, 생리적 특성, 품종, 질환에 따른 영양 설계는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영양상담은 더 이상 부가적인 선택이 아니라 진료의 기초이자 치료의 연장선으로 자리한다. 수의사가 환자의 식이 관리까지 통합적으로 설계해 환자의 수치와 식단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담을 통해 보호자와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필수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