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길에 쓰러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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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길에 쓰러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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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9호] 승인 2021.10.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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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의 변사(辯士)이며 사상가인 순우곤이 “남녀 간에 주고받는 것을 직접 하지 않는 것이 禮입니까” 하고 묻자 맹자는 그것이 禮라고 하였다. 그러면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구해주어야 하냐고 묻자 맹자는, 형수가 물에 빠진 것을 구해주지 않으면 이는 승냥이니, 남녀가 주고받는 것을 직접 하지 않는 것은 禮이지만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구해주는 것은 권도(權道, 임기응변)라고 하였다. 

순우곤이, 지금 천하가 물에 빠져있는데 맹자께서는 천하를 구해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천하가 물에 빠졌을 때는 도(正道)로써 구원해야 하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는 손으로써 구원해야 하니, 선생은 (제가) 손으로(權道) 천하를 구원하기를 원합니까?

[淳于曰 男女授受不親이禮與잇가 孟子曰 禮也니라 曰 嫂溺이어든則援之以手乎잇가 曰 嫂溺不援이면是는豺狼也니男女授受不親은禮也요嫂溺이어든援之以手者는權也니라. 男女授受不親은 禮也요 嫂溺이어든 援之以手者는 權也니라. 曰 今天下溺矣어늘 夫子之不援은 何也잇고. 曰 天下溺이어든 援之以道요 嫂溺이어든 援之以手니 子欲手援天下乎아 (孟子 離婁章句 上 17)] 

맹자는 위기 상황에서 權道를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천하가 도탄에 빠졌을 때는 부패한 위정자들과 손을 잡고 권도를 따르기보다는 正道를 따라서 천하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權은 저울추처럼 무게(상황)에 따라 그 위치가 변동하는 것을 말한다. 원칙에 반대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리에 맞게 되는 것이 權道이다. 위급상황에서는 원칙만 고집하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판단하여 행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權道를 모르고 자신의 작은 믿음에 집착하다가 낭패를 본 예가 많이 있다. 

춘추시대의 송 양공(宋 襄公)이 초(楚)와 싸움을 벌였다. 적군이 배로 강을 건너올 때 공격하자는 신하의 말에, 襄公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않다고 말하며 강을 건너올 때까지 공격하지 않다가 결국 대패하였다(宋襄之仁: 송양지인).

노(魯)나라에 살았던 미생(尾生)이란 사람은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다리 밑에서 기다리던 미생은 억수 같은 비 때문에 물이 불어 피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기다리다가 결국 물에 휩쓸려 죽었다(尾生之信: 미생지신)(본지 2016.09.08. 시론).  

최근 길에 쓰러진 여성을 부축하였는데 성추행범으로 몰려 고발당한 사례가 있어서 여성이 길에 쓰러지면 남성들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지난 7월 3일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한 여성이 쓰러졌다. “쓰러진 여성이 짧은 반바지에 장화를 신고 있어 신체 노출이 조금 있었다”며 “때문에 해당 칸에 있던 어떤 남성들도 그 여성을 부축하거나 도울 생각을 하지 않더라”라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많은 미투 사건을 본 남성들이 쓰러진 여성에게 응급 처치를 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남녀가 직접 접촉하면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것이 禮는 아니지만, 權道로서 곤경에 빠진 이성을 손으로 구해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이 보는 공공장소에서 남성이 의식을 잃은 여성에게 응급 처치를 하여 여성이 살아났다면 자기를 구해준 남자가 성추행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보고 아무 조치도 안 한다면 승냥이와 다를 바 없다. 한 사람을 구하는데 천하를 구하기 위해 걸어가야 할 正道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설혹 고발을 당한다고 해도 禮를 무시하고 權道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한 대목이다. 

 







 

박재학 교수
서울대 수의과대학
실험동물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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