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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불不인忍지之심心)서울대 수의과대학 실험동물의학교실 박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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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승인 2014.07.03  11: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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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해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죠, 반딧불이 아름답지만 모기는 잡아 죽여요, 숲을 사랑하지만 집을 지어요,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죠,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네요, 모순 덩어리 제 삶을 고백합니다” 최근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한 일간지에 실렸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하며,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는다는 이효리의 갈등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수의사로서 동물실험을 하고, 또 실험동물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길을 걸어온 본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낯설지 않다.
그동안 포유동물을 이용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개발된 의약품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본인은 연구에 꼭 필요한 동물실험도 포유류인 마우스 대신 물에 사는 제브라피쉬를 우선적으로 이용하도록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가끔 학생들은 마우스와 제브라피쉬 모두 동물인데, 왜 제브라피쉬를 권장하는지 질문을 하기도 한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한다는 이효리의 모순과 다를 바 없다.

동물실험의 결과를 이용하여 의약품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이나, 동물의 고기와 알과 털가죽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할까?
농경시대 전에는 사람들이 사냥을 나가지 전에 일종의 의식을 치르며, 사냥한 동물에 대해서는 함부로 살과 뼈를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 전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소를 땅에 묻었을 때 살 처분된 가축을 위한 진혼제(鎭魂祭)가 여기저기에서 열렸었다. 많은 실험동물시설에서는 매년 동물실험에 희생된 동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수혼제(獸魂祭)가 열린다. 이와 같이 의식(儀式)을 통하여 갈등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물로부터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을 소비자들이 접하지 않도록 분리시키는 방법도 이러한 갈등을 막는 방안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은 동물실험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이익과 고통 받는 실험동물에 대한 배려를 3R 원칙을 고려하면서 동물실험을 하고 있다.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수를 줄이고(Reduction), 동물대신 대체할 수 있는 시험계를 찾고자 하는 대체방안의 모색(Replacement), 그리고 동물실험 과정 중에 동물에게 최소한의 고통을 주는 것(Refinement)이 바로 3R인 것이다.
육상동물이나 조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은 먹는 페스코 베제테리언이나 마우스대신 제브라피쉬를 동물실험에 사용하려는 대체법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러한 결정을 한 사람들 자신도 그 선택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근거가 무엇인지 혼돈스러울 때가 많이 있다. 나는 그 답을 맹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맹자』의 粱惠王章句上의 7章에서 맹자가 제선왕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제가 호흘이라는 사람에게서 들었는데, 왕께서 당상에 앉아 계실 때 소를 끌고 당하를 지나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 이것을 보시고 “소는 어디로 가는가”하고 묻자 그 자가 대답하기를 “장차 이 소를 가지고 종의 틈에 피를 바를 것입니다”라 하였는데 왕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 소를 풀어주어라. 나는 그 소가 벌벌 떨면서 죄도 없는데 사지로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라 하셨고, 그자가 대답하기를 “그러면 종의 틈에 피를 바르는 일을 폐지하오리까”라고 하였는데 왕께서는 “어떻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소를 바꾸어라”라고 하셨다지요. “이런 마음이 바로 왕께서 왕 노릇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백성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그랬다고 하지만 저는 진실로 왕께서 그 소가 불쌍하여 차마 소를 죽이지 못하게 하신 것을 압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소가 벌벌 떨면서 죄도 없는데 사지로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으로 소를 바꾸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후 맹자가 말하기를 “왕께서 만일 그 소가 죄도 없이 사지로 가는 것을 측은해 하셨다면 소와 양을 어떻게 구분하셨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진실로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내가 양으로 소를 바꾸게 한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왕께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이 바로 仁(사랑)을 이루는 방법이니 소가 벌벌 떨면서 죄도 없이 사지로 가는 것을 왕께서는 보았고, 그래서 측은지심이 발동하였지만 양에 대해서는 아직 그러한 불쌍한 모습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맹자는 소가 벌벌 떠는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소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서 仁의 발단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글에 대하여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람은 금수에 대하여 생존을 같이 하지만 종류를 달리 한다(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동물을 이용하고 잡아먹을 수는 있다). 그래서 쓰기를 예로써 하고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보고 들었을 때에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베풀어지는 것이다(蓋人之於禽獸 同生而異類 故用之以禮 而不忍之心 施於見聞之所及).

즉, 동물의 고통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仁을 이룰 수 없고, 인을 이룰 수 없다면 왕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육상동물에게서 보고 들었던 고통스러워하는 행동을 생선에서는 많이 감지하지 못하였다면 생선으로 육상동물고기를 대체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반려동물로서 즐거움과 고통을 같이 나누는 개를 잡아먹는 대신 그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고통스러운 모습을 접하지 않은 소나 돼지 닭 또는 생선을 먹는 것이 仁(사랑)을 이루는 군자의 길이 아닐까?

   
 

서울대 수의과대학
실험동물의학교실 박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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