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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동물에 대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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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승인 2018.09.05  20: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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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강아지를 위하여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을 주며 돼지는 고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1995)에서 주인공 베이브는 보통 돼지보다 똑똑하여 양치기 훈련을 받고 전국 양몰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강아지를 기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베이브를 고기라고 생각할까?

동물에 대하여 이러한 일관성이 없는 이중적 시각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며 일부러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인간의 관계만 생각하기도 힘든데 동물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하며 동물은 단지 이용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동물은 일방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며, 동물도 감정이 있고 침팬지는 자기인식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면서 고기와 가죽, 알 등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하여 연구하는 잔혹한 동물실험도 당장 그만둘 것을 요구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갈등 요인은 한사람의 내면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서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돼지 베이브는 개보다 더 영리하기 때문에 고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중적 시각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공자(BC 551년~479년)가 기르던 개가 죽자 제자 자공으로 하여금 그것을 묻어주게 하면서 말씀하기를, “내가 들으니, 낡은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을 묻기 위한 것이고 낡은 수레 덮개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를 묻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 나는 가난하여 수레 덮개가 없으니 그것을 묻을 때 역시 방석을 깔아주어 그 머리가 흙속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禮記·檀弓下).  

그렇다면 동물은 감정을 느끼고 사물을 인식하며 더 나아가 도덕적 존재인가?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일부 인정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도덕은 도(道)의 理想에 따라 행동 할 수 있는 있는 상태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중용(中庸) 1장에서, 하늘이 명해준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하였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성리학의 토대가 되는 주희의 이기론(理氣論)에 따르면 ‘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로서 理에 해당하고, ‘情’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氣에 해당한다. 인(仁)으로써 사랑하고, 의(義)로써 미워하고, 예(禮)로써 사양하고, 지(智)로써 아는 것을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동물들도 인의예지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논쟁은 인물성동론(人物性同異論)을 주장한 이간(李柬, 1677-1727)과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1682-1751) 사이에 일찍이 논의 된 바 있다. 동물이 인간처럼 도덕적으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지만 최소한 동물이 사람처럼 감정이 있고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할 줄 안다는 증거는 많이 있다. 동물은 통증을 느낄 줄 알고 정신적인 두려움이나 즐거움을 표현하며 외부 상황에 대한 판단 처리를 하여 결정을 한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마음처럼 동물도 그러한 욕구가 있다면 사람들은 최소한 그러한 동물의 利害에 대하여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바로  고통 받는 상대를 인(仁)으로써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의 도덕적인 면이다.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 생존 할 수 없었던 원시시대의 사냥꾼처럼 현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을 죽여서 고기를 먹고 동물실험을 통하여 의약품을 개발하면서 동물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생존 목적을 넘어서 지나게 많은 육식을 소비하거나 심미적인 목적으로 동물을 희생하고 또한 목적이 불분명한 동물실험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물에 심각한 고통을 준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흰색의 술잔과 검은색의 사람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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