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금 연주가이면서 글 쓰는 작가, 독립서점 운영자이자 방송인, 공연-전시 기획자이기도 한 천지윤 선생은 더 이상 어떤 하나의 직업인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재 다능한 인물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음악가/예술가로 규정할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번에 두 번째 에세이를 출간했다. 책 이름은 「직감의 동선」이다. 직감의 동선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이름이 다소 낯설고 솔직히 직관적으로 어떤 뜻으로 이런 제목을 지었나 잘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가 세계 여러 도시로의 여정을 떠나 예술가로서 때로는 엄마로서 체험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이 책의 편집인이 ‘직감’과 ‘동선’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책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여정을 서술하기 전에 뜬금없이 지난 10년, 구운몽이라는 부제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부제 뒤에는 꿈, 물거품, 이슬, 번개라는 키워드가 따라붙는다. 작가의 개인적인 인생사를 헤아리긴 어렵지만 다양한 도시를 향한 여정을 써 나가기 앞서 지난 10년간의 인생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남기고 싶었으리라.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보다 작가의 아들이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와 뉴욕-보스턴에서의 여정은 아들과 함께 하였는데, 책의 두 번째 장인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첫 에피소드는 과거 운동선수였던 리프트(우버와 유사한 차량이동 제공 서비스) 기사와 엄마로서의 유대감을 느끼는 장면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순간, 아 이번 책에서 어쩌면 또 하나의 주인공은 저자의 아들이겠구나 싶었다. 이후 뉴욕에서 아들과 관련한 지나보면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책에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쿠바에서의 여정은 마치 스케치하듯 그림처럼 글을 풀어냈다. 작가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주변 환경을 포함, 쿠바의 풍경과 일상을 날 것 그대로 써내려 갔는데 책을 읽다 보면 올드카와 낡은 건물, 루프탑에서 연주하는 저자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그려진다. 그곳에서의 어려웠던 상황, 그리고 그와는 상반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 책에서 가장 짧게 서술된 도쿄에서의 여정은 아마도 이제는 연주자뿐만이 아닌 글을 쓰는 작가, 독립서점의 주인장으로서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남긴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츠타야 서점을 방문한 이야기는 글쓴이에게는 쿠바나 미국에서의 여정만큼 소중한 기억과 기록일 것이다. 필자는 예전처럼 일본맥주를 즐기진 않지만(요샌 다양한 국산맥주에 더 손이 간다) 한 때 편의점에 가면 무조건 산토리 몰츠 맥주만 4캔씩 샀던 기억이 있는데 도쿄를 서술한 이 장에서 바로 이 맥주가 나와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이제 세상은 전자 책을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물성이 있는 책을 손에 쥐고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그 느낌은 검지손가락으로 모니터를 흝어내리는 느낌과 같을 수 없다. 이 책은 표지가 흑백사진과 함께 붉은 천으로 되어 있는데 그 느낌 또한 남다르다. 책의 만듦새 또한 저자의 해금연주처럼 하나의 예술작품인데 실물을 보면 강렬함과 함께 따스함이 내 앞에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