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보호자와의 진료비 문제로 인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보호자와의 진료비 분쟁 사례가 많기 때문에 최근 정부에서도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 정책을 시행하면서 수의사와 보호자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보호자와 수의사 간의 신뢰를 얼마나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동물 진료비는 단순히 숫자로만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요소들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크기와 상태, 위급성, 동물병원의 설비와 수의사의 숙련도 등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진료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한 가격 비교만으로 진료비를 판단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저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를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이 개는 회음부 탈장이 심각한 상태였으며, 방광과 전립선까지 탈장된 복잡한 케이스였습니다. 중성화 하지 않은 대형견이었기 때문에 수술의 난이도가 높았고, 긴 시간 동안 세밀한 처치가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수술비와 입원비도 상당한 금액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호자는 수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비용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1차 수술은 잘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 전 미리 가능성을 고지한 대로 반대편으로 탈장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반대쪽도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국 보호자는 “돈이 없다”며 추가적인 수술비 지불을 거부하는 상황까지 갔고, 저는 현실적인 고민 끝에 수술비를 할인해 수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상을 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지만 저는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수술이나 진료 전 생길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보호자와의 충분한 사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보호자는 치료 과정과 예상 비용 그리고 치료 중 생길 수 있는 돌발상황이나 복합증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해를 가질 때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동물병원 임상환경에서는 정말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호자들은 추가적인 진료비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는 보호자와 수의사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요소로 작용하며, 결국 동물병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이 됩니다.
수의사는 정당한 치료비를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보호자와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자들은 진료비가 왜 그렇게 책정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수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과잉진료를 한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러한 불신이 쌓이면 보호자는 수의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수의사는 자신의 전문성이 과소평가된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수의사에 대한 불신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수의임상의 현실 속에서 회의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수의사로서 동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보호자의 오해와 불신 속에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진료비를 받는 것이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부당한 비난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보호자의 경제적 사정과 동물의 치료 필요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저를 발견할 때는 수의사로서 자괴감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반려동물 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의사가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전문 의료인으로서 존중받을 때 보호자와 수의사 간의 신뢰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말 못하는 동물들을 위해서 제가 가진 기술로 도움을 주며 수의사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