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의 심리학, 수의사들의 정신건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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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의 심리학, 수의사들의 정신건강을 말하다
  • 강수지 기자
  • [ 292호] 승인 2025.03.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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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수의사 있어야 건강한 동물 있어...체계적인 심신 치유 프로그램 필요해

수의사는 단순히 동물만 치료하는 직업이 아니다. 보호자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받아들이고, 생명을 다루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며, 때로는 최선을 다해 돌본 환자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여러 요인이 결합되면서 수의사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의사들의 자살률은 일반 인구대비 약 2~4배 높다. 이는 의사나 치과의사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현실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체력적 부담 외 감정적 노동 심해
수의사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부담은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감정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치료 과정 중 생기는 보호자와의 갈등은 물론 치료비 문제로 인한 충돌도 생긴다. 그 과정에서 수의사는 보호자의 감정적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이유로는 윤리적 딜레마다. 치료 가능성이 있지만 보호자가 경제적 여건 등을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 혹은 안락사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감과 갈등을 겪게 된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번아웃에 처하는 수의사들도 많다. 일반적인 근무시간을 초과해 긴 근무를 수행하며, 24시간 동물병원이 증가함에 따라 응급상황에 대비해 대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대응 매뉴얼 마련 및 관련교육 등 시도
의사나 치과의사들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받고 있는 반면 수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제는 수의사들에게도 체계적인 심신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최근에는 수의계 단체나 지부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수의사회(회장 황정연, 이하 서수회)는 ‘고충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임상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 및 고충 대응 관련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분쟁의 극초반 △분쟁 초반 및 수의료과실 소송 시작 전 상황이 발생할 경우 △보호자가 진료기록부 발급 및 열람을 요청하는 경우 △법원에서 진료기록부나 CCTV 영상에 대한 ‘증거보전결정’을 받은 경우로 구분해 각각의 상황마다 관련 내용 및 대처법을 소개하고 있다.

서수회 측은 “수의료분쟁의 대부분은 보호자의 관점에서 치료결과에 대한 불만족에 의해 발생한다”면서 “수의사는 전문적 지식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 그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의무는 없으므로 치료 전 비용 및 과정, 예후 등을 충분히 설명한 상황이라면 주어진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수의사회(회장 이성식)는 ‘2023 3차 연수교육’에서 ‘수의사 삶의 질’을 주제로 수의사들의 정신건강을 조명했으며, 한국동물병원협회(회장 최이돈)는 ‘2023 한국동물병원협회 온라인 학술대회’서 ‘우울증과 자살-수의사들의 건강한 정신건강’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해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치료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수의사의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내부적으로도 적극적인 대처 방안이 전무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수의사들이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이를 숨기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의사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동료 수의사들과 적극적으로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정신적 지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유지’는 필수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고, 취미 생활이나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의사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수의사가 있어야 건강한 수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수의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제는 수의사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과 지원이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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