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임상시장이 빠르게 세분화되면서 특정 진료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학술 단체의 창립이 이어지고 있다. 고난도 진단과 치료 기술이 세분화, 전문화하면서 분야별 지식과 임상 경험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유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학술 연구회와 학회를 중심으로 한 세미나도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 학술단체의 증가로 교육 기회가 넓어지며, 국내 수의계의 학술 기반 역시 한 단계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11월에는 수의학 각 전문 분야를 대표하는 학회와 연구회가 잇따라 출범했다. 11월 4일 한국수의체외신장대체치료연구회가 창립했고, 11월 9일에는 대한수의신경학회가 출범한데 이어 11월 23일에는 한국수의마취통증의학회가 출범했다.
11월 한 달 동안에만 세 개의 전문 학술단체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국내 수의학 학술 지형은 빠르게 세분화되고 있다. 기존의 연구회 활동까지 더해지며, 분야별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학술 생태계는 한층 더 촘촘해지는 모습이다.
늘어나는 학술행사·달라지는 운영 방식
이제는 학술단체 수 증가에 따른 단순한 행사 확대를 넘어 학술행사 운영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창립총회와 동시에 첫 학술대회를 여는 사례가 늘면서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구조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학술 프로그램 구성 역시 보다 전문화되는 흐름이다. 한국고양이수의사회는 종양학·외과·내과 강의와 함께 마취 실습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고양이 진료 분야 특화 교육을 강화했다.
한국수의영양학회는 장기별 주제로 영상진단, 병리, 영양학을 결합한 다학제 강의를 선보이며 교육 범위를 확장했다.
병원 내부 교육 프로그램이 학술단체로 편입돼 정례화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스마트동물병원에서 운영되던 VHR 프로그램이 한국수의체외신장대체치료연구회 공식 세미나로 전환된 사례는 병원과 학술단체 간 연계 모델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학술행사 수 증가에 따른 구조적 문제 제기도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콜라보 세미나와 합동 학술 프로그램, 동물병원 주도 그룹 스터디의 학술 단체화 등 보다 유연한 운영 방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학술단체 증가에 대한 현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교육 프로그램 선택지가 넓어졌고, 특정 진료 분야를 중심으로 한 심화 학습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다.
K 원장은 “학회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수의학의 전문 분야가 세분화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필요한 분야의 교육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임상수의사들이 케이스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로 꼽힌다. 병원 내부의 진료 경험과 노하우가 학술단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 수의사는 “연구회들은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이 있다”고 했다.
다만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 원장은 “최근 출범한 연구회나 학회 상당수는 로컬병원 원장들이 중심이 돼 임상 경험과 케이스 공유에는 강점이 있지만, 학문적 연구까지 병행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대학과 연구기관의 참여를 통해 연구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해외에서는 상위 단체가 학술단체를 공식 승인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학술단체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평가할 수 있는 체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학술단체들이 현장 진료와 학문을 어떻게 연결해 나갈 것인가다. 새롭게 출범한 학술단체들이 임상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꾸준히 축적하고 공유해 나간다면 국내 수의학의 전문성과 진료 수준 역시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