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더이상 모른 척 하지 마세요”
상태바
“동물학대, 더이상 모른 척 하지 마세요”
  • 박진아 기자
  • [ 269호] 승인 2024.04.05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의사 대응 가이드라인 및 법적 보호장치 마련 급선무 

얼마 전 수의사 A씨는 직원의 다급한 호출을 받았다. 털이 덥수룩하게 덮인 강아지의 털을 깎는 과정에서 진물과 기생충들이 발견된 것. 영양실조 증상도 있어 방치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A씨는 보호자와의 상담을 통해 치료를 권했지만 보호자는 급히 병원을 떠났다. A씨는 동물학대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그리 큰 상해도 아닌데다가 다음 진료로 바빠 별다른 조치 없이 지나갔다. 

‘동물보호법 제16조 2항’에 의하면 수의사나 동물병원 종사자는 학대당하거나 유기된 동물을 발견할 경우 신고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학대 의심 상황이어도 실제 신고까지 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수의사 신고의무 있으나 외면
지난해 동물자유연대가 국내 임상수의사 185명을 대상으로 동물학대 의심 진료경험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4.6%인 175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증상은 골절, 뇌진탕, 안구돌출, 폐출혈 등 물리적 손상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들 중 실제 신고까지 이어진 경우는 11명뿐이었다. 그마저도 실제 기소까지 이뤄진 경우는 단 3건뿐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1.7%밖에 안 되는 수치다. 

신고를 주저한 이유는 다양하다. 보호자와의 갈등이나  법적으로 곤란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고, 소득 및 고객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나 학대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신고 처리에 대한 불신도 주 요인 중 하나다. 


해외 가이드라인 참조해야
수의사가 적극적으로 동물학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의심사례를 가려낼 수 있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현재는 학대로 판단할 기준이나 방법, 증거 수집 및 신고 방법 등에 대한 지침이 없어 수의사 개개인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학대와 비슷한 양상인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지침서를 발간해 선별도구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구체적인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위험성 평가를 위한 보호자 설문지가 별도로 존재한다. 링크 그룹은 동물학대가 의심될 경우 수의사가 밟아야 할 절차를 ‘ARDR’로 규정했다. △학대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Ask) △동물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하는 공감(Reassure) △상담과 동시에 문서화 (Document) △보고/신고(Report)이다. 초기 감별단계에서부터 피해 동물의 보호까지 대응 과정 전반에 걸친 지침이다. 

미국에서도 학대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경우를 항목화했다. △정밀검사·치료 및 털관리 거부 △동물복지 관심 부족 △위험하거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동물을 키움 △키우는 동물 수가 과도하게 많음 △치료를 연속적으로 진행하지 않음 △예방가능한 전염성 및 기생충성 질병으로 인해 내원 △여러 동물병원 이용 △보호자가 자가치료 시행 △병력과 일치하지 않는 부상 등이다. 


제보 수의사 법적 보호 필요해
법률적, 제도적 장치도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조차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22년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동물학대 신고 건수는 6,594건인데 반해 반려가 대부분이고, 동물보호법 위반 총 1,181 건 중 동물학대의 처분은 36건(3.0%) 에 불과했다. 동물학대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신고한 수의사의 신변이 노출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현행법상 신고자를 위한 법적 보호장치는 없으며, 오히려 신고자가 개인정보유출이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할 위험도 있다. 신고자의 인적사항 등이 공개돼도 이에 대한 처벌 조항도 없다. 신고하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어 사실상 권고에 가까운 상황에서 수의사의 양심적인 신고를 마냥 기다리기는 어려운 이유다. 

동물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법률적, 제도적 장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의사는 학대의 초기 단계인 신고에서부터 피학대 동물의 보호까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대응체계의 지침 및 보완이 필수적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부산수의컨퍼런스’ 후원 설명회 4월 18일(목) 오후 5시 리베라호텔
  • 제일메디칼 ‘제3회 뼈기형 교정법' 핸즈온 코스 5월 19일(일)
  • 동물병원 특화진료 ‘전문센터’ 설립 경쟁
  • [연자 인터뷰 ㉟] 김하정(전남대 수의내과학) 교수
  • 현창백 박사, V-ACADEMY ‘심장학 세미나’서 심근증 다뤄
  • [클리닉 탐방] VIP동물의료센터 동대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