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코코와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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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코코와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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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1호] 승인 2014.07.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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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의과대학 실험동물의학교실 박재학 교수

코코는 배변훈련을 잘 시켜서 강아지 때부터 화장실에서 용변을 잘 보고 가족에게 귀염을 받으며 살아왔으며, 올해 12월이면 11살이 되는 이가 세 개나 빠지고 한쪽 눈이 녹내장 때문에 실명을 한 시추 할머니다.

어릴 때부터 아토피 때문에 피부염을 앓아온 것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같이 데리고 자고 놀아주어 한 가족이 된 코코가 한쪽구석에 힘없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워 깨워서 같이 놀아주기도 한다.

옛날 같은 활기찬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훈련을 받은 베트콩(하면 누워서 죽은 척한다)은 아직 잘 기억하여 어릴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에 유방암 수술 때문에 열흘 가까이 입원을 하고 있어 그 빈자리가 더욱 쓸쓸하다.

올 초에는 딸아이가 치와와 한 마리를 갑자기 입양하였다. 평소 아내는 강아지를 한 마리 더 키우자는 아이들의 간청을 들은 척도 안 하며 한 마리 더 들여오면 다른데 가서 살겠다고 위협을 하던 차였다.

밤에 갑자기 데려온 손바닥만한 치와와를 보고 잠시 긴장감이 흘렀지만 이내 마음 약한 안사람은 입양을 묵인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5개월 된 이 꼬마 치와와 강아지가 할머니 코코를 몹시 괴롭히고 있다. 꼬마는 용변을 못 가려 아무데나 오줌을 싸고 다닌다. 어떤 때는 지그재그로 오줌을 흘리고 다니는가 하면 소파 뒤 같은 은밀한 곳에 배변을 하기도 한다.

할 수 없이 두 평 정도의 운동 공간을 화장실에 붙여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코코가 용변을 보기 위해 그 공간에 들어가면 난리가 난다. 꼬마가 겁 없이 코코에게 덤벼드는데 이빨 빠진 할머니 코코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힘에 겨워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러면 꼬마는 앞뒤로 코코를 공격하는데 참다못한 코코가 잇몸을 드러내며 겁을 주면 그제서야 한쪽으로 물러난다.

가끔 꼬마와 같이 놀아주게 하려고 코코를 그 구역에 머물게 하면서 사료를 준다. 그러면 꼬마는 자기 사료를 먹으면서도 으르렁거리며 코코의 사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코코에게 덤벼들면 코코가 물러나고 그 틈을 타서 코코의 성견사료를 먹는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코코를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체격도 꼬마보다 더 큰데 왜 저렇게 꼬마의 공격에 대하여 피하기만 하는 것인지. 귀찮아서 그럴까 아니면 겁이 많아서 그럴까. 혹시 손주뻘 되는 꼬마에 대한 배려 또는 양보에서 저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코코를 의인화(擬人化)해 볼 때도 있다. 코코에게 배려 또는 양보와 같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있다면 나는 코코를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통증이나 두려움 및 기쁨을 느낀다. 사람과 동물이 틀린 점은 의식(意識)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의식(自意識)에 대한 차이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맹자는 말씀하기를 사람이 금수와 다른 바는 아주 적은데 많은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그 적은 것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孟子曰人之所以異於禽獸者 幾希하니 庶民은 去之하고 君子는 存之니라)라고 하였다.

얼마 안 되는 그 차이는 사람이나 동물이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性. 즉,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군자는 금수와 달리 仁義禮智를 잘 보존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동물처럼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버려서 금수에 가깝게 된다. 즉, 금수는 仁義禮智 같은 군자만이 가지고 있는 天性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맹자는 생각하였다.

코코가 진정으로 꼬마에 대한 배려 또는 양보를 보였다면 그것은 仁義禮智 중 禮의 단서(端緖)가 되는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辭는 내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讓은 내 것을 남에게 주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이 혹시 코코가 가지고 있는 꼬마에 대한 마음이 아닐까.

많은 동물학자들은 동물이 보여주는 행동에서 인간의 도덕성과 유사한 점을 찾아내었다. 영장류와 인간의 비교행동학적 연구로 유명한 프란스 드발은 침팬지 같은 유인원이 보여주는 도덕적 행위에 대하여 많은 저술을 하였다.

또한 익사 위기의 조련사를 물 밖으로 끌어낸 돌고래 이야기나 화재로부터 주인을 구해낸 개의 이야기 등은 동물도 사람의 도덕적 기준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도덕성은 바로 맹자가 말씀한 仁義禮智의 사단(四端)에 해당되는 행위일 것이다. 동물의 생명을 구하면서 다른 동물의 안락사를 시행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가는 수의사에게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결과들이 계속 축적된다면 모순 없이 동물과 더불어 사는 미래가 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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